사찰여행

역사의 섬에 창건된 전등사

다보등 2008. 4. 30. 13:38

 

 

★전등사★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창건될 때는 진종사로 불렸는데 고려 충렬왕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옥등을 헌납한 후 이름이 전등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대웅보전이 보물 제178호로, 또 약사전이 보물 제179호로, 그리고 전등사 범종이 보물 제 3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등사는 삼랑성에서 전등사까지 이어지는 약 500m 정도의 길이 아주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전등사로 들어 가는 초입에 자리한

삼랑성은 작은 성문과 성문 주위에 석성이 남아 있을 뿐 이렇다할 성의 형태를 보기는 힘들다. 이 성은 정족산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단군의 세 아들이 축조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자료참조-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을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것과 같은 공덕이 있단다._()_

경건한 맘으로 돌려야 하거늘 어찌 재미삼아 돌려 본 것 같아서 죄송스러움이 묻어 나는 미소...-.-;;

 

 

★대웅보전(보물 제 178호)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

(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나부상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하였다.전설에 의하면 이것은 절을 짓던 도편수의 사랑을 배신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쁜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등사 대웅전의 나부상은 희랍의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지만 그런 조각상을 세운 당시

도편수의 익살과 풍자, 그런 파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전등사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료참조-

 

★약사전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건축양식이 대웅전과 비슷하여

조선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측면 2탄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범종(보물 제 393호)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종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다. 이 종은 1097년 중국 하남성 숭명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음통이 없으며 겉에 상ㆍ중ㆍ하로 구획이 지어져 띠가 둘려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 표면에 8개의 네모진 구획이 마련되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많이 마멸되어 판독하기가 어렵다.
이 종은 기하학적 무늬로 장중하고 소박한 중국 종의 솜씨를 보이며 종소리가 맑고 아름다운 게 특징이다. 이 종은 일제 말기 군수 물자 수집에

광분한 일제가 공출이란 명목으로 빼앗아 가는 바람에 한때 전등사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다시 전등사로

옮겨왔다. 하마터면 귀중한 범종이 일본의 만행으로 없어질 뻔 했으나 부처님의 가피로 본래의 장소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범종옆 죽은 나무에 달마대사를 조각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_()_

 

석가탄신일을 보름남짓 남겨 놓은 절마당에 예쁜 연등들이 바람따라 고개짓을 하며 온몸으로 미리 축하 하는듯.....

 

★수령이 약 400여년 된 느티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나무의 형태가 우아해 전등사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전등사의 은행나무

전등사에는 두 그루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이 5백 년이 넘는 나무들이다.
한 나무는 노승나무, 다른 한 나무는 동승나무로 불리는가 하면 암컷, 수컷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전등사 은행나무는 꽃은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