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따라서

서산사람을 닮은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

다보등 2010. 4. 7. 13:50

서산사람을 닮은 백제의 미소 -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운산면 소재지에서 원평리로 넘어가는 길로 고풍저수지를 옆에 끼고 강당골의 맑은 하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가야산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 위치한 커다란 암벽을 안쪽으로 파내고 들어가 부조형식으로 조각된 삼존불상이며 우리나라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강댕이 미륵불>

서산시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이 미륵불은 강댕이로 진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강당교에서 북쪽으로 약 100m지점의 고풍저수지안에 있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 지금도 섬처럼 되었으며 풀이 자라고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저수지로 수몰되어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 하며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국보 제 84호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입상, 좌측에 제화갈라보살입상, 우측에 미륵반가사유상을 배치하였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불 형식이며 두 입상에 하나의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불상은 『법화경』의 석가와

미륵, 재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중 가장 뛰어나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석가여래입상(본존불) 크기:280cm

연꽃잎을 새긴 대좌위에 서 있는 석가여래입상은 조각솜씨도 뛰어나지만 진가는 웃음에 있다. 둥글고 풍만한 얼굴에 활짝 웃고 있는

유쾌한 인상은 독특한 개성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쾌활한 장자풍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여유로운 표현을 학자들은 당시 백제가 국력의 신장으로 외국과 교역을 많이 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얼굴은 중국의 북제 불상에서 관련성을 찾을 수 있으나 본존불 얼굴에 번지고 있는 온화한 미소는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과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고 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지게 한 것도 백제인의 독특한 솜씨이다.

 

목에는 삼도가 없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에 걸쳤다.두광의 원안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보주형두광이며, 수인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이다.

 

제화갈라보살입상 / 크기:170cm

제화갈라보살은 석가에게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준 과거불인 연등불의 보살일때 이름이며 웃음이 역시 일품이다.

과거세에 석가모니가 보살일때 꽃을 공양하고 진흙길에 자신의 머리칼을 깔아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게 한 바, 그 때 석가모니에게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내린 부처이다.이 보살의 티없이 맑은 웃음도 역시 다른 부처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이다. 흔히 보관에 화불이 있다하여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나 법화경사상에 의하여 제화갈라보살로 봄이 옳다고 한다. 머리 뒤에는 중심에 연꽃이 새겨진 보주형 광배. 발밑에는 복련 연화좌가 있다.

 

 

미륵반가사유상 /크기 :166cm

미래불인 미륵반가사유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동글고 풍만한 얼굴이다.

발밑에는 복련대좌가 있으며 머리뒤에는 우협시보살의 광배형식과 같은 보주형 광배가 있다.당시 유행하던 풍조가 모두 바싹 마른 형태이지만

여기에서는통통하게 살이 찐 소년적인 체구의 보살상을 세련된 조형감각으로 조각한 백제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마애불(磨崖佛)이란?

절벽의 암벽이나 거대한 바위 면에 선각이나 돋을 새김 기법을 사용하여 불교의 주제나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애불은 인도의 석굴사원에서부터 유래하며 기원 전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5세기경부터는 매우 빈번히 조성되었다.

이후 간다라, 서역지방을 거쳐 중국 각지의 수많은 석굴에 무수한 마애불들이 조성되었으며 특히 산동지방의 마애불은 백제의 대중국 통로인

서산.태안지역을 거쳐 우리나라 삼국시대 마애불 조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