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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의 길 자유의 길 :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다보등 2017. 8. 15. 09:16

민국의 길 자유의 길 :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민국의 길 자유의 길>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무료

2017.08.04~10.15

 

 

전시를 열며/

올해는 우당 이회영(1867~1932)의 탄생 150주년 되는 해다. 이회영은 서울에서 '삼한갑족'으로 꼽히는 전통 문벌 출신으로서 그 구시대 끝자락에서 나라의 쇄신에 노력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략하자 나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바쳐 그 회복에 헌신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쳤다.이회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를 포함한 6형제는 조국을 떠나 중국 동북지방에 독립 운동기지를 건설하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동지들과 함께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식민지 시기 내내 무장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6형제는 우리나라가 '제국'에서 '민국'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사표가 되었다. 이것이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첫 번째 이야기다. 광복의 날에 6형제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1869~1953)뿐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어 대한제국-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을 잇는 가교가 되었다. 이시영은 생애 마지막 과업으로 '참된 민주정치'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으나 정치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부통령직을 버렸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자유'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는 이회영이 아나카스트로서 보여준 정신과 일맥상통했다. 이것이 전시의 두 번째 이야기다.

6형제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시대에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 묻는 계기가 될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역사박물관장 송인호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격동의 시대에 독립운동의 방향을 고민하였던 6형제의 모습을,

2부에서는 6형제가 서간도 망명 후 무장독립운동을 위해 준비했던 여러 방편들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사상적 기반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던 이회영에 대해 살펴본다.

4부에서는 광복이전에 떠나버린 형제들을 대신하여 대한민국을 건설하여 노력했던 이시영의 모습을 조명한다.

 

 

 

 

 

 

 

 

한일강제합병 이후 전 가족이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망명하였으며 이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건설하여 무장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린 우당 6형제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강사 최태성의 전시설명 영상을 각 존별로 마련하여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6형제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광복 72주년을 맞아 서울의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6형제의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나라의 쇄신에 노력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략하자 나라로 부터 받은 모든것을 바쳐 그 회복에 헌신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친 6형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 묻는 계기가 될것이다.

 

 

 

 

 

2017 국제다양성영화제

마침 이날 상영하는 영화가 있길래 보았다.

영화는 인질이라는 영화였다. 아제르바이잔...낯선 나라의 영화다. 오후 2시 상영인데 마침 시간이 딱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화려하고 강한 영화하고는 흐름도 그렇고 하여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않았다.

영화는 무료이고 시간맞춰 1층에 있는 대강당(아주개홀)으로 가면 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시간과 상영작들을 볼 수 있다.

 

 

 

 

영화 시작전 화면에서는 현재 박물관내에서 행사중인 다양한 안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질 Hostage> 감독 엘다 구리예프, 아제르바이잔, 2005년

 

가라바흐 지역을 둘러 싼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간의 전쟁으로 아르메니아인은 가라바흐지역에 살고 있던 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 전쟁으로 주인공의 남편은 포로로 잡혀가고 세 아이들과 함께 남겨졌다. 어느날 한 아르메니아인 농부가 포로로 잡혀 그녀의 집에 남겨지게 되는데...결국은 남편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되고, 포로로 잡고 있던 아르메니아 농부를 죽여 시체교환이라도 하자는 마을사람들을 제치고 분노로 치를 떨며 그녀가 직접 농부를 죽이겠다고 총을 들었으나 끝내 죽이지 못하고 집으로 돌려 보낸다. 죽은 남편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을 것이지만...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이들의 아빠이고 그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역사박물관 : 5호선 광화문역(7번출구) / 서대문역(4번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