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21km/산티아고순례길 10일차
2018년 5월 21일 흐림,비
일기예보상으로 오후에 비소식이 있는 날이다. 비가 시작되기전에 숙소 도착이 오늘의 목표이다. 오전 6시30분 출발.
오늘로 열흘째 되는 날이군. 이제 걷는 것도 이력이 붙어 여러모로 수월하다. 나는 그동안 별탈없이 잘 걸었으나 다행인건 다른 이들도 이제 이력이 붙었는지 어디가 아프다어쨌다 하는 소리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길도 모두 무탈하기를 바라며 오늘 아침도 상쾌하게 출발이다.
흐린 하늘을 보며 출발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등뒤쪽에서 해가 비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는 여정이라 언제나 해는 뒤쪽에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서서히 해가 높아지니 덥다. 그늘도 없는 너른 들판엔 밀밭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다. 초록밀밭이 완만한 구릉쪽으로 달려간다. 그 끝에 하얀구름이 몰려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변해버린 요즘, 2018년에 걸었던 산티아고순례길의 사진을 보며 그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그리운 날들이라는 걸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밀밭을 양쪽에 두고 곧게 뻗은 길은 끝도 없이 지평선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언제쯤인가부터 길바닥에 달팽이가 많이 보인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길건너편으로 기어가는 달팽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혹시 밟힐지도 모른다며 집어서 풀속으로 던졌다. 달팽이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길을 건너는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데, 그들이 새벽부터 혹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긴 여행을 떠나왔건만 그걸 집어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는다는 것은 우리가 산티아고순례길을 거의 다 걸었는데 다시 원위치 시키는 것과 같은 결과 일 것이라며 제발 그냥 제자리에 두고 가는 것이 달팽이를 위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한참 웃었지만 그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봤을 때 무모한 행동을 하는 달팽이 같아 보이지만 달팽이가 길을 건너는 건 반대편에 있는 짝을 찾아 가는 길이란다(사실일까?ㅋㅋ). 달팽이의 이유있는 이동입니다. 제발 그냥 놔두세요! 달팽이 이야기로 한참을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산토도밍고에 들어섰다. 의외로 빨리 도착하였다. 다행인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한 걱정을 하였다. 우리는 마을초입에서 장을 봤다. 등심을 구워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 데 페레그리노스(8.5유로, 시트포함. 침대에 시트를 먼저 씌우고, 침낭을 깔아야 혹시 모를 베드버그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 시설이 좋았던 알베르게였다. 처음엔 샤워할 때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았으나 이젠 샴푸하나로 후딱 해치운다. 린스도 비누도 필요없다. 빨래할 때나 비누를 쓰게된다. 것도 어떤 땐 샴푸로 해결한다. 그리고 햇볕 좋은 마당에 빨래를 넌다. 빨래는 늘 잘 마른다.
각국의 사람들이 나름의 음식을 하느라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점심에 고기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닭다리백숙을 해먹었다. 잘먹어야 잘 걷는다~~ㅎㅎ
아침에 길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문을 연 카페)에서 마시는 모닝커피와 또르띠아 혹은 크로와상은 늘 기분좋은 하루를 열어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산티아고순례길이다. 800km의 길을 걸으며 별별 아름다운 길을 걷게 된다.
때로는 비도 오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더라도 그것 조차도 아름다운 순례길에 포함이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변해버린 요즘, 2018년에 걸었던 산티아고순례길의 사진을 보며 그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그리운 날들이라는 걸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는 닭에 대한 전설이 있다. 15세기 부모님을 따라 순례를 하고 있던 청년이 마을 여인숙에 도착했을 때 여인숙의 딸이 한 눈에 반하여 사랑고백을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자 상심한 딸은 그에게 복수하고자 은잔을 몰래 가방에 넣고 도둑으로 고발을 하였다. 결국 청년은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단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하고 돌아 오는 길에서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기쁨에 찬 부모가 재판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다. 마침 닭고기 요리를 식사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 "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먹으려 하고 있었던 이 닭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나와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런 전설 때문에 순례자들에게 여행 중에 수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은 징조로 여기게 되었단다.
주방에선 저마다의 다양한 요리들을 하느라 분주하다.
우리도 순서를 기다리다 자리가 나면 잽싸게 고기를 익혀서 체력 보충을 하였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