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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본문

서울문화유산답사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다보등 2021. 3. 29. 10:17

오래전 2008년 2월에 갔다온 곳으로 당시의 사진을 다시 올려본다.

요즘 강화나들길에 대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블친이 봉천동 마애석불을 찾아 두번을 갔으나 찾지 못했다는 글을 보고 오래전 다녀온 봉천동마애석불 포스팅을 찾아 보았다.

인솔자의 뒤를 따라 갔으니 지금 찾아간다고 해도 아마 찾을 수 있을 까 싶다.

신림동호림박물관-낙성대유지-봉천동마애석불-구 벨기에대사관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낙성대유지와 봉천동마애미륵좌상에 관련된 사진 올린다.

 

 

낙성대 유지/서울시 기념물 제3호

이곳은 고려 명장으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무찔러 국위를 떨친 인헌공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이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의 지명이 금천이었는데 장군의 출생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리탑식의 삼층탑을 세워 후세에 전해왔다.

1973~1974년에 걸쳐 장군의 나라를 위한 슬기와 용맹을 이 나라 안보의 의표로 삼게 하고자 출생 유적지를 정화하고 사당과 부속건물을 신축하여 원래 이곳에 있던 석탑을 현재의 낙성대 경내로 이전하고 그 옛터인 여기에는 유허비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한 것이다.

 

 

 

관악산 북쪽 골짜기로 올라 약수터를 지나면 바위가 열립한 곳에 거대한 절벽이 있는데,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바위면에 등신대의 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낮은 육계, 소반의 머리칼, 다소 풍성하게 보이는 갸름한 얼굴 등은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늘씬한 체구나 타원형의 어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17세기 조선조 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행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마애미륵불은 17세기 조선조 불상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만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불을 현상화하였다.

이 불상을 1630년(인조 8년)이라는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어서 조선시대 조각사 편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