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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관동대로 긴 여정끝에 동대문에 도달하였다 본문

물길따라 떠나는 여행/관동대로 392km

관동대로 긴 여정끝에 동대문에 도달하였다

다보등 2012. 11. 5. 08:00

관동대로 긴 여정끝에 동대문에 도달하였다

 

 

 

 

벚꽃이 만발하여 가던 발길을 자꾸 잡던 4월의 봄날에 시작을 하여 유난히 뜨거웠던 한여름을 지나고 누렇게 벼가 익어 가는 들판을 걸어 가을이 깊어진 10월말 긴 여정의 끝이 보이는 날이다. 울진 평해를 출발하여 대관령을 넘어 원주, 양평을 거쳐 동대문에 이르는 관동대로 392km 천리길을 걸어 오늘 서울로 들어서 동대문에 이를 것이다. 어제는 가을답지 않게 종일 비가 뿌리더니 오늘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다. 투명한 가을날 아침 동대문으로의 마지막 발걸음이 오전 8시 출발을 한다. 그 길 시작점에 조말생묘역을 먼저 찾는 것으로 오늘 일정이 시작되었다. 조말생(1370~1447)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평중,군초, 호는 화산, 본관은 양주미여 고려말 서운관정을 지낸 의의 아들이다. 태종18년(1418) 이조참판을 제수받고 가정대부가 되었으며 형조판서에 올라 태종을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지금 조말생묘가 있는 자리엔 석실서원이 있었던 자리이다.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석실서원이 없어지고 그자리에 조말생묘가 들어 섰다고 한다. 석실서원은 청음 김상헌의 충절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으로 김상용,김수항,민정중, 이단상,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김원행,김이안, 김조순이 배향되었다.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위 시조로 유명한 김상헌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북인들과 관계가 안 좋던 광해군 때에는 이렇다 할 관직을 얻지 못하다가 인조반정 이후 다시 조정에 나가게 되었다.

 

 

1900년 고종 황제의 묘가 홍릉의 장지로 결정되자 본래 금곡에 있던 조말생의 묘소가 이곳 수석리로 옮겨왔다. 양주 조씨의 영묘재가 들어 서면서 그렇지 않아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석실서원 터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조말생묘역에서 바라 보이는 전경이 정말 훌륭하였다.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모습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 없이 따사롭고 시원시원한 풍경이었다.

 

 

 

 

 

 원 위치와 건물크기 등 자료도 충분치 않은 석실서원은 단원 김홍도와 이병연의 그림과 시에 남아 있다.

 

 

 

 

 

 

 

왕숙천 위를 지나는 왕숙교를 지나며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해태상에게 눈 인사를 나눈다.신쌤의 관동대로에 의하면 왕숙천은 경기도 포천시 수원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양주시를 지나 구리시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 지류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팔야리에서 8일 머물렀다고 해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세조를 광릉에 안장하고 나서 '선왕이 길이 잠들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드디어 서울로 들어 섰다. 울진 평해를 출발한지 14일만이다. 벚꽃이 한창이던 때 출발을 하여 알록달록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에 서울로 들어 섰다. 길바닥에 수북히 내려 앉은 은행잎이 어찌 예쁜지 그냥 갈 수가 없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사진도 찍고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기분이 좋다. 날씨 또한 좋다.

 

 

 

 

교회 건물이 엄청나게 크길래 눈길 한번 주고 간다. 커도 너~~~무 크다~~ㅋ

 

 

신정일 선생님께서 뻥튀기 두봉지를 사셨다. 잠시 입이 즐거웠던 시간이다.

 

 

 

구리시 외곽에 있는 정갈한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소박하지만 멋진 컵을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우리땅걷기에서는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관동대로를 끝내며 기념품으로 술잔도 되고, 물잔도 되고, 커피잔도 되는 만능 컵을 선물로 준비를 하였다. 컵 하나에 모두들 행복해 하였다.

 

 

 

 

 

 

 

 

<성북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풍물시장. 도저히 앞으로 걸어 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요일 풍물시장 구경삼아 한번쯤 나서 볼 필요가 있겠다. 정말이지 별아별 물건들이 다 있는듯 하였다.느긋하게...그리고 찬찬히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할듯~~^^

 

 

 

흔히들 동대문이라 부르는 '보물 제1호 흥인지문'에 도착을 하였다. 나는 울진 평해에서 예까지 오는 여정 전구간을 다 걷지를 못했다. 중간중간 다른일이 겹쳐 빼먹은 구간이 있었으나 이렇듯 동대문을 눈앞이 두니 감개가 무량하다. 옛길은 거의 전부 다 시피 도로로 변하여 매연과 소음으로 걷는데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미있는 길을 걸었음에 뿌듯함이 밀려 온다.  역사의 길에 발자취를 남긴 여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본다.

 

 

 

 

4월부터 10월까지 관동대로 천리길 전 구간을 걸은 도반들이 인증서를 받았다. 정말 진심으로 측하하고 축하할 일이다.

 

 

특히 우리땅 최연소 도반 올해 초등 1년생인 오희수군~~

관동대로 천리길 전 구간을 완보하고 인증서를 받았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오희수 대단혀~~

 

 

 

 

관동대로 천리길 전구간 완보자들 인증서 받고 흐뭇한 표정으로 찰칵~~!!

축하드립니다~~~ㅉㅉㅉ

 

 

 

조선시대 있었던 9개의 간선로중 하나인 관동대로는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여주, 원주, 대관령, 강릉을 거쳐 삼척을 지나 울진의 평해까지 가는 구백이십리 길이고 걷는데 열사흘이 걸린다. 정철의 <관동별곡>이 이 길위에서 씌어 졌으며 율곡이나 신사임당,허균과 허난설헌, 김시습,정철,이색 등 내노라 하는 수많은 선조와 또 유배객이 지나갔던 길 '관동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