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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사지에서 뜨거운 8월 관동대로를 마치다 본문

물길따라 떠나는 여행/관동대로 392km

흥법사지에서 뜨거운 8월 관동대로를 마치다

다보등 2012. 9. 5. 09:00

흥법사지에서 뜨거운 8월 관동대로를 마치다

 

 

 

 

어제 우리는 문재정상에서 시작을 하여 안흥을 거쳐 석조불두가 있는 원주 교향리까지 30km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치악산 구룡사에서 오전6시에 아침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또 어디까지인가?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의 길목, 계속 치악산 자락을 따라 간다. 아침부터 8월의 마지막 일요일 햇살은 장난아니게 뜨거웠다. 그 뜨거움을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이번엔 점심을 먹고 시원한 그늘진곳에서 쉬었다 걷기로 하였다. 그래 어느 다리밑에서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등뒤로 느껴지는 찬기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너도나도 각자 편한 자세로 그렇게 1시간 30분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오후 3시무렵부터 걷기 시작을 하였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온 몸의 열기를 뺐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다시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 뜨거운 열기속으로 거침없이 걸어가는 도반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 들러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 왔으며 그 보장법과 재배법을 익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를 실현 시킴으로써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을 구황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 조엄이다. 자는 명서, 호는 영호, 본관은 풍양으로 상경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52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이조판서를 지낼 때까지 청렴한 관리로서 항상 백성들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한 인물이라고 한다.

 

<조엄신도비>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귀부 및 이수/보물 제453호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흥법사지에서 관동대로 5차기행을 접기로 하였다. 오늘같이 뜨거운날 끝까지 기행을 하신 모든 도반들께 박수를 보낸다. 다음달 9월에 있을 다음 여정을 기대하며 제 각기 어제,오늘의 뿌듯함을 가슴에 담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흥법사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신라때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보물 제365호), 진공대사탑비가 있었는데,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보관하고 있다. 현재는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탑비귀부 및 이수(보물 제463호)만이 남아있다.

 

 

 

 

   관동대로는 수도인 한양과 경기지방의 동부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구실을 했다.이 길은 조선시대의 관리들뿐만 아니라 소몰이꾼이나 보부상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길이자 입신출세를 갈망하던 이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거느린 일본군이 평해로를 따라 한양으로 진격하기도 했다. 천리길 관동대로를 4월부터 매월 한차례씩 이틀에 걸쳐 10월까지 걷고 있는 중이다. 8월의 관동대로는 5번째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