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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 본문

사찰여행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

다보등 2016. 1. 13. 11:50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

 

 

 

 

 

 

『12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미황사의 전설은 사뭇 신비롭다. 숙종 18년(1692년)에 세웠다는 부도암 사적비에 전설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돌로 만든 배가 사자포구에 닿았다. 그곳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배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 문수보살, 탱화 등이 있었다. 향도들이 모여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갑자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금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으로 경상(經像·불경과 불상)을 모실 곳을 찾다 이 산에 일만 불(佛)이 있어 여기에 배를 세웠다. 소에 경을 싣고 나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봉안하라’-.

미황사 이름 또한 설화에서 유래한다. 미(美)자는 소의 ‘음매’ 하는 소리에서 따왔으며, 황(黃)자는 금인의 색을 뜻한다. 우전국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등장하는 곳으로,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포구는 지금은 땅끝에서 보길도로 가는 배가 닿는 포구다. 』

 

 

 

 

공양간

 

 

 

연말연시를 땅끝마을 미황사 템플로 갑작스레 결정을 하고 따라 나선 땅끝나들이었다. 오랜 길친구 도반이 미황사 템플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숟가락 하나 더 얹고 따라 나선 길이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집 '미황사'에 그렇게 가게되었다.  2015년 12월 31일 해넘이는 흐린 날씨탓으로 희미한 노을만 남기고 저물었다. 응진전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황사의 번듯한 전각들이 즐비한 모습으로 결코 작지않은 절집이다. 창건이후 미황사는 조선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년)을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598년에 중창을 하였고 2008년에 삼창을 하였다. 지운, 현공, 금강스님은 1989년 퇴락한 미황사에 오게되었다. 흔적만 남아있던 절을 복원하고 증축하여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황사에는 금강(47) 스님이 있다. 스님은 20여 년 전, 미황사와 인연을 맺었다. 미청년 스님에서 중년의 아저씨 스님이 된 20년 세월. 그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은 이 절을 ‘템플스테이를 가장 많이 하는 사찰’로 만들었다.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원 대표이기도한 금강스님이 지도하는 명품 템플스테이가 유명한 곳이다.

이 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자하루에 모인 우리들은 잔득 긴장을 하였으나 오히려 스님의 소탈한 미소에 무장해제가 되었다. 스님의 노래로 시작된 작은 음악회도 가졌도 108참회와 발원 시간도 가지며 새해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템플로 이름이 난 이유가 있었다.

1년에 1만 여명이 템플을 찾아오고 그 중 외국인 수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루를 머물러도 되고 한달을 머물러도 된다. 격식이 따로 없다.

매달 한번씩 열리는 7박8일의 참사람의 향기는 종교에 상관없이 참여하여 묵언,참선,산행, 차담으로 이어진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이용하여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자정을 넘기는 시간에 두명씩 짝을 지어 재야의 타종하였다. 크고 굵은 범종소리는 넓고 멀리 퍼져나갔다. 종소리가 나면서 다들 숙연해지는 듯 하였다. 타종후엔 작은 연등을 들고 부도전까지 걷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 시간만큼은 장난끼 거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2016년 1월 1일 오전4시반에 도량석을 시작으로 법당에 모여 새벽예불을 드렸다. 이른 아침으로 떡국을 먹고 미황사 뒤편에 달마산엘 올랐다. 사위는 칠흑같은데 랜턴으로 발밑을 살피며 산엘 올랐다. 땀을 바짝 흘리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달마산능선이다. 서서히 밝아 오는 동쪽 하늘엔 신비한 색으로 새해아침이 열렸다. 다행인건 어제 해넘이는 볼 수가 없었지만 오늘 해맞이는 붉은 해가 떠올랐다. 안개로 인해 흐릿하긴 하였으나 분명히 붉은 해가 떠올랐다. 2016년 올해는 붉은 원숭이해란다.병신년 붉은해가 떠 올랐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고, 내 이웃의 건강과 안녕도 기도하고 거국적이긴 하지만 세계평화를 기원하기도 했다.

 

 

 

 

 

 

 

 

 

 

 

 

 

 

 

절뒤로 보이는 489m의 달마산을 뒤로하고 단청없는 민낯의 대웅보전이 고졸한 멋을 풍기고 있다. 단청은 일반 건축물과 달리 법당이나 궁궐의 권위를 나타낼 목적으로 건물에 그린 그림이다. 또 바람이나 나무를 썩게 하는 여러 원인들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기도 했다. 미황사 대웅보전의 경우 건물 안을 보면 벽화가 그려져 있듯 외벽에도 단청을 했었다. 그러나 1754년 건물을 중수할 때 단청을 했으나 250여 년이 넘는 동안 바닷바람 등의 영향으로 그 고운색이 바랬다고 한다. 보물 947호이다.

 

 

 

 

대웅보전 기둥에 게,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창건 설화를 보면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님상을 싣고 땅끝 사자포구에 배가 한 척 닿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배의 상징으로 대웅보전을 지었고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기둥의 주춧돌에 새겨 대웅보전이 배임을 묵언 중에 설명하고 있다한다.

 

 

 

 

 

 

대웅보전 우측으로 살짝 높은 곳에 있는 응진전이다. 사찰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일품이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 중에서 아라한과를 얻은 뛰어난 제자들을 모신 전각이다. 1982년 대웅보전 보수공사 때 대들보에서 나온 기록에 의하면 대웅보전과 마찬가지로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597년 중창하여 1751년과 2001년 중수하였다. 역시 보물 제1183호이다.

 

 

 

 

 

 

 

 

부도전은 사리나 유물을 봉안한 석조물을 말한다. 탑이 주로 사찰안에 있는 반면 부도는 대부분 사찰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