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눈 내리는 날 정동길에서, 구 러시아공사관, 중명전 본문
덕수궁을 한 바퀴 돌고 고궁을 빠져나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오늘 같은 날에 걸맞게 무얼 먹을까 고민은 잠깐이었고 아주 익숙한 점심을 먹었다. 정동길에서는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남편은 추어탕 간판을 보더니 냉큼 추어탕을 먹겠다 하였다. 맘에 들지 않았으나 어쩌겠냐 따라 들어간 추어탕 집에 돈까스도 하더라. 그래서 그나마 특별하다 싶게 나는 돈까스 ㅎㅎ
남편이 만족해 하는 추어탕과 보기보단 맛있었던 돈까스로 배가 불렀다.
오후 2시가 넘어 점심을 먹고는 이날 저녁은 생략이었다.
여전히 곱게 내리는 눈길을 걸어 인근의 구 러시아공사관를 들렀다.
이곳은 몇 번을 온 적이 있는 곳이라 익숙한 곳이지만 이렇게 눈 내리는 고요속에 잠겨있는 모습은 또 처음이라 탄성이 절로 났다. 한 눈에 전체가 다 보이는 작은 공간이다.
러시아공사관은 1884년 조선과 러시아의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0년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1895년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간 거주했다 (아관파천). 이후 한국 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어 현재 탑 등 일부 시설만 남아있다.
이를 197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고, 1977년 사적 제253호로 지정되었다.
을미사변으로 일본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덕수궁에서 이곳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였던 길을 고종의 길이라 하여 복원되어 있는데 오늘은 눈이 많이 쌓여 잠정 폐쇄되었다.
현재 이곳은 정동공원으로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 탐방로 3코스'이다.
어쩌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동공원 설경을 뒤로하고
커피 한 잔으로 따스하게~~
여유롭게~~
정동극장 옆 좁은 골목 안쪽에 덕수궁 중명전이 있다.
모르고 지나치기 쉽상이다.
중명전은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궁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황실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할 서재로 1899년경 지어졌다.
당시 건물 이름은 수옥헌(漱玉軒, 옥을 씻는 집)이었다.
1905년 11월, 무력으로 동원한 일본의 강압 속에서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는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외국인들의 사교 클럽인 경성구락부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을씨년스럽다가 있는데,
을씨년스럽다의 '을씨년'이 바로 '을사년'에 있었던 을사늑약 이후에 쓰인 말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보기에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는 의미로 '을사년스럽다' 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을씨년스럽다' 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지금은 주로 날씨에 빗대어 사용하는 말이다.
서울 정동교회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정동길을 걸었다.
이제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이 이곳이겠지?
오늘따라 노랫말이 더 아름다웠다.
덕수궁 앞 시청역에서 전철을 타고 종로5가역에서 내려 광장시장에 왔다.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덕수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붐비는 이런 모습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엔돌핀이 팍팍 나온다.
와~~ 먹거리도 무진장 이더구만 점심을 그득하게 먹은 후라 안타깝게 눈으로만 실컷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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