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눈 내리는 날 덕수궁에서, 석조전 중화전 본문
12월 30일 아침부터 내리는 눈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많이 왔다.
바람도 없이 고요히 내리는 눈은 금방 쌓였고 확실하게 딴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더군다나 사락사락 우산 위로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고요할 수가!
덕수궁을 걸으면서 연신 나오는 말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이렇게 아름다울 줄 미쳐 몰랐다.
살면서 이런 날 고궁에 오는 것도 처음.
암만 이게 겨울의 멋이지!
펄펄 눈이 옵니다 ♬♩♪
바람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 나라 선녀님들이 하얀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
동요 제목은 생각 나지 않는데 가사는 그리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덕수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정릉동 행궁에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운궁애 다시 왕이 머문 것은 조선 26대 왕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시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덕수궁에 여러 전각을 세우고 영역을 확장하였다. 당시 궁궐은 현재 규모의 3배 가까이 되었다. 1907년 고종이 일제 강압에 의하여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 권역이 빠르게 해체 및 축소되었다. /덕수궁 안내 팜플렛에서
덕수궁 - 석조전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여 1900년 착공하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이다.
황실의 공적 공간인 1층은 중앙홀, 접견실 등을, 황실의 사적 공간인 2층은 황제 침실, 황후 거실 등을 재현하였다.
석조전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훼손되었지만 2014년에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덕수궁을 정비하였다.
정전인 중화전 기단의 답도에는 용 문양을 새기고, 창호를 황금색으로 칠하여 황제국의 위용을 갖추었다. 중화전은 1902년 지었을 때 중층이었지만, 1904년 화재를 겪고 1905년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축소되었다. 중화전 남쪽 중화문을 둘러싸고 사방에 행각을 둘렀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주변 행각과 전각이 헐리고 정원이 생기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中和' 뜻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으로 <중용>에서 유래한 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식당으로 가는~~
눈은 계속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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