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북악산 한양도성을 걷다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서울.경기

북악산 한양도성을 걷다

다보등 2023. 11. 20. 06:30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 가래떡 데이?
아니 아닙니다~우리 손자 생일입니다~~ㅎㅎ
저녁에 생일 축하 자리를 같이 하기로 하였고 그 동안 낮 시간에 우리 부부는 북악산엘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1020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 윤동주문학관에서 내렸다.
북악산 한양도성은 다른 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창의문에서 시작을 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도로 건너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윤동주문학관은 여러번 방문한 곳이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윤동주문학관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의 작품을 썼다. 특히 '별 헤는 밤'이 널리 알려져 '별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사용이 금지된 우리말로 시를 써,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이러한 시 창작을 통한 저항 때분에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2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울한 식민 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민족 시인 윤동주를 기리기 위해, 종로구는 용도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조성(2015. 10.14.)하였다. 문학관을 통해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 정신, 그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고자 한다.

 

 

 

 

 

주변에는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경사의 동상이 있다.

1968년 북한 무장 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청와대 바로 옆에 이르렀을 때 최규식 서장이 그들을 검문하며 막아섰고 검문을 통과할 수 없었던 공비들이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격렬한 총격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최규식 서장은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면서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이러한 희생으로 청와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정종수 경사는 역시 1968년 1.21 사태 시 최규식 경무관과 함께 무장 공비와 교전 중 순국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무장 공비의 침투를 몸을 던져 저지한 곳에 표석을 마련하고 청와대로 가는 길이 바라 보이는 이곳 자하문 고개에 동상과 추모비를 세워 놓았다.

 

 

창의문

 

창의문은 북대문인 숙정문과 서대문인 돈의문 사이에 자리한 북소문이다.

문 이름에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을 담았다. 태종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 문을 열어두는 것이 왕실에 좋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통행을 금지했다가 중종 때 다시 열었다. 인조반정 때 반정세력이 창의문을 통과해 창덕궁으로 향했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한양도성 : 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 성城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본격적으로 성곽을 막 오르기 시작하는데 앞에 가는 이들이 '오~!',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처음엔 관심 없다가 소란스러움이 예사롭지 않아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어머나 꽃사슴이다!"
뿔이 제대로 달린 멋진 꽃사슴이었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고 어쩌고 하는 사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아차차~~ㅠ
허망하여 꽃사슴이 사라진 숲만 찍어 보았다.
청와대 뒷산에서 사슴을 보긴 또 처음이라 잠시 흥분하였더랬다.
 

 
 
토요일인 이날 흐린 날씨이긴 해도 푸근하고(손은 시렸으나) 걷기엔 그만이었으나 북악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줄을 서서 올라야 했다.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한양도성 구간은 시작부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해서 예전에는 와룡공원 방향에서 시작하곤 했는데 이번엔 일부러 창의문에서 시작을 하였다.
계단 내려오는 것은 무릎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까~~

올라가는 것이 힘은 들지만 수많은 계단(많이 가파르다)을 감수하며 땀 깨나 흘리며 올라갔다.

 

 

 

한양도성은 지난 600여 년 동안 조선과 대한제국, 대한민국 수도의 든든한 울타리로 존재해 왔다.

청와대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북악산 한양도성 등산로 구간을 오랜 기간 통제해 오다 2006년 4월부터 홍련사에서 숙정문을 거쳐 촛대바위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이 개방되었다.

1년 후(2007년 4월)에는 와룡공원에서 출발해 숙정문과 청운대, 백악마루를 거쳐 창의문에 이르는 4.3km 구간을 추가 개방했다.

 

 

 

백악마루 : 1396년 처음 한양도성을 쌓을 때 공사구간을 97개로 나누고,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다.

백악마루는 성곽의 기점으로 이곳에서 천(天) 자 구간이 시계 방향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구간의 이름은 조(弔) 자다.

 

백악산

 

 

54년 만에 국민 품으로 완전개방

2019년 4월에는 기존의 신분확인 절차를 없애고, 개방 시간을 확대했다.

2020년 11월에는 북악산 북측에 해당하는 곡장과 청운대, 평창동 구간을,

2022년 4월에는 숙정문과 청운대, 삼청동으로 연결되는 길을 추가 개방하였다.

2022년 5월에는 청와대 전면개방으로 지난 54년간 단절되어 있던 청와대-백악정-칠궁 구간(북악산 남측)을 완전개방하게 되면서 비로소 북악산을 온전히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게 되었다.(자료 참조)

 

 

백악마루

 

 

 

1.21 사태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센터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1.21사태 소나무

 

 

 

청운대는 한양도성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남쪽으로는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로 일대, 북쪽으로 북한산의 절경이 펼쳐진다.

 

청운대

 

 

 

청운대를 지나며 이 구간에는 멋진 소나무들을 볼 수가 있다.

소나무 보호 군락지가 길게 나있다.

 

팔각정

 

소나무 보호 군락지
숙정문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며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말바위는 삼청공원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악산 끝에 있어 말(末)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바위에 잠시 말(馬)을 매어 둔다고 해서 말바위라고 부른다는 설도 전해진다. 바위 근처에 서면 성북동과 세종로, 경복궁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는 삼청공원 후문으로 하산을 하여 삼청동으로 나오게 된다.

소소하게 눈요기할 것들이 있으나 12시 30분이 지나는 시간이라 서둘러 점심을 먹기로 하고 걸음을 옮긴다.

 

 

 

삼청동 수제비 집에 어마어마한 줄을 보고 놀랐다.

수제비가 어떠하길래 저래 긴 줄을 서는 것인고?

 

 

 

수제비 집을 지나 그나마 줄이 길지 않은 홍합밥을 전문으로 하는 청수정에서 우리도 줄을 섰다.

수제비보다는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우리는 홍합밥으로 정했다.

청수정은 예전에도 두어 번 먹어본 적이 있는 곳이다. 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우리가 줄을 서있는 동안 줄은 점점 길어졌다. 

허허~~ 요즘은 이렇게 줄을 서야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흠...

뭐 홍합밥정식이 상이 비좁게 이래 나온다.

반찬 양에 비하여 그릇이 너무 황당하게 크다. 

반찬 두세 개를 합해야 한 접시를 채울 듯싶다.

그래도 홍합밥이 맛있어서 이해하기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