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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없어졌으나 면사무소에 자리세를 받고 있는 김천 쌍계사지 본문
절은 없어졌으나 면사무소에 자리세를 받고 있는 쌍계사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경상북도 기념물 제167호> 250년 되었다는 유성리소나무 아래에 앉아 허무한 생각에 잠시 잠겼었다. 절터에 가면 그나마 이곳이 절이 있었나보다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 흔적이나마 있었건만 이곳 쌍계사터엔 그나마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있는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아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마침 면장님이 나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면사무소가 들어 선 자리가 쌍계사 땅이므로 해마다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 쌍계사 주초 몇개를 모아 놓은 곳 조차 면사무소 뒤켠에 있어서 면장님 아니었으면 맥없이 소나무만 쳐다보고 그냥 돌아설뻔 하였다.천년 세월을 이겨 온 쌍계사가 아득히 먼 옛날 없어진 것도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1950년 6.25때 소실되었다는 절집이건만 이렇듯 막막하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을이 들어섰다하니 그 또한 어이없기까지 하였다.
쌍계사하면 흔히 지리산자락의 하동 쌍계사를 떠올린다. 쌍계사란 두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있는 절이라 하여 쌍계사라 한다.하동 쌍계사가 아닌 김천 증산면 유성리에 있는 쌍계사지를 찾았다. 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말없이 몇백년을 살아 온 소나무 3그루만이 남아 그 먼 옛날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현재 소나무가 있는 증산면사무소 주변은 신라불교를 전래한 도선국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쌍계사(雙溪寺)지로써 천년세월을 이겨 온 쌍계사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7월 14일 북한군의 방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는 주초 몇개와 소나무 세그루가 터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절집을 대신하여 증산면사무소가 들어 서 있다. 재밌는건 증산면사무소는 해마다 인근의 청암사(청암사는 쌍계사의 산내암자였으나 쌍계사가 소실되고 쌍계사를 대신하고 있다)에 사백만원의 토지 사용료를 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쌍계사터에 세를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면사무소가 절집에 세를 물고 있는 곳은 이곳뿐일 것이다.
쌍계사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25포집으로 조선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의 건축물이었으며 천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한 17,18세기 한국 불교 경학사의 화엄학 대가의 가풍과 선과 교의 맥을 이은 불교사에 중요한 사찰이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주초 몇개만이 어렵사리 한곳에 모아 두었을 뿐으로 어디서건 이곳이 절이었다는 추측도 할 수 없는 모양새로 말없이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허망하기 그지 없다.
증산면에 전하여 오는 이야기 - 1951년 7월 14일. 어둠이 가시고 동이 터 올 무렵 적막에 싸인 증산 쌍계사 대웅전에 북한군 복장의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는 손에 기름통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텅 빈 법당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법당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내 화마가 모든 전각들을 삼켜버렸다.잔불은 이틀동안 지속됐다. 쌍계사의 모든 것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되었다. 천년고찰 쌍계사는 이렇게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 날 쌍계사에 불을 지른 북한 여군은 이곳에서 1km쯤 떨어진 장뜰마을(혹은 천왕문) 앞까지 달아나서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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