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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히터 <나의 미친광이 이웃>/스페이스K 서울 전시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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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히터 <나의 미친광이 이웃>/스페이스K 서울 전시장

다보등 2022. 9. 16. 11:18

이대 서울병원에서 남편 건강검진을 하던 날, 로비에서 마냥 기다리기 무료하여 이대 병원에서 걸어도 15분이라는 '스페이스K 서울' 전시장엘 갔다 왔다. 이 날은 태풍 힌남노가 막 우리나라를 빠져나간 날이었다. 하늘이 그럴 수 없이 파랗고 맑은,  그래서 햇볕이 또한 그럴 수 없이 따갑고 눈이 부셨던 날이었다. 태풍의 영향도 있지만 병원 가는 날이라 평소와는 달리 양산도 선글라스도 준비가 안된 날이었다.  눈부신 햇살이 부담이 되는 날이긴 하지만 병원문을 나섰다. 

 

이대 서울병원
이대 서울병원

 

 

'스페이스K'는 2011년 설립된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 공간이다. 2020년 9월 강서구 마곡동에 확대 개관한 '스페이스K 서울'은 예술을 활용한 코오롱의 차별화된 예술 사회공헌 활동으로 그간 국내 신진작가, 중견작가 등을 발굴해 전시 기회를 제공해 왔다. 또한 국내에 덜 알려진 해외 작가 전시를 개최하는 등 예술가에게 지속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지원과 후원을 통해 현대미술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스페이스K 서울

 

'스페이스K 서울'은 6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 독일을 대표하는 회화작가 중 하나인 다니엘 리히터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나의 미치광이 이웃(My Lunatic Meighbar)'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온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사회적 이슈와 언론매체의 이미지, 대중문화 등 우리 주변을 둘러싼 사회현상에서 영감 받아 회화로 종합하는 '다니엘 리히터'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형상 회화가 시작되는 2000년부터 형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최근까지의 작품 25점을 소개한다.

 

 

제목 '나의 미치광이 이웃(My Lunatic Neighbar)'은 네이버(Neighbor)의 철자를 의도적으로 바꿔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보여준다.

 

관람료 : 성인 8,000원

주차 : 30분 무료

작품 제목의 QR코드를 통해 오디오가이드(배우 소유진 씨가 재능기부로 참여)를 이용할 수 있다.

 

 

다니엘 리히터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펑크 록 밴드의 포스터와 앨범 재킷을 그리는 것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20대에 사회 운동과 음악에 심취했던 작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함부르크 예술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작가는 예리하면서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신문 기자, 잡지, 영화, 미술사, 광고 등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이미지를 재해석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동시에 우리 삶의 공포와 불안을 포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회화로 펼쳐낸다. 다니엘 리히터는 프랑크푸르트 쉬른 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했으며 덴버 미술관, 도이치방크, 뉴욕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최근에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아테네오 베네토(Ateneo Vento)에서 대규모 신작 전시를 진행 중이다.

 

(左) 가져가 2020,&nbsp; &nbsp; (右) 무제

 

빨강이 검정을 이길 수 있을까, 2015

 

투아누스, 2000

<투아누스, 2000>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환각적 화면으로 묘사된다. 커다란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여있는 화면은 경찰의 심문을 받는 사람들처럼 보이다가도 구애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는 19세기 프랑스 회화 기법을 참고하여 마약 중독자들이 모인 공원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흰고릴라는 갈 길을 간다, 2000

 

피녹스 Phienox, 2000

 

<피녹스 2000>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작품은 독일 퉁일 10주년에 발표되었기에 베를린 장벽 붕괴에 대한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도 보인다. 견고했던 사회 정치 구조가 균열되는 지점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작가는 스스로 몸을 태우고 다시 살아나는 전설의 새 피닉스에 빗대어 몰락과 부흥을 반복하는 정치와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만일야화 10001 Nacht, 2011

 

2011년 그려진 일련의 회화는 험난한 산세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낭만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던 시기 그려진 작품들로 이방인, 오리엔탈리즘, 모험, 영웅, 자연의 장엄함 등 낭만주의 문학과 미술의 클리셰들을 새롭게 재현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너를 돕는 건 내 본성에 어긋나, 라고 늑대가 말했다, 2011

<그러나 너를 돕는 건 내 본성에 어긋나,라고 늑대가 말했다, 2011> 벼랑 끝에 매달린 남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늑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작품 제목에서 늑대가 남자를 돕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밝히면서 위태로운 낭만과 현실에 부딪힌 자유와 꿈을 상기시킨다.

 

헤이 조, 2011

<헤이 조, 2011>는 터번을 쓴 남자와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가 만나는 상황을 묘사한다. 19세기 문학에서 터번은 미지와 환상의 세계, 중동을 향한 서구인들의 궁금증과 모험을 의미하지만,  911 테러 이후 위협과 갈등의 상징으로 변모된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말보로맨의 전형이며 마초의 상징이지만 웰빙과 금연의 시대적 흐름으로 이제는 변해버린 과거의 낭만이다.

 

 

영원 2013

 

(左) 비너스 M.F, (右) 외로운 지진

 

(左) 바람 부는 날 쓰레기 버리기, (右) 도시 밖의 소리

 

 

전시는 2층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인터뷰 영상 장면이 흐르고 있다.

맞은편 작은 창(?)으로 1층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제'라는 작은 작품이 있다. 

 

2층에 올라와야 보이는 오른쪽 작은 그림 <무제>

 

다니엘 리히터에게 사회 정치적 이슈는 지금도 작가의 주요 관심사지만 최근 작업에서 보면 서사성에서 벗어나 스타일을 단순화시켜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으면 지루해진다.'는 작가의 말에서 새롭고 깊이 있는 회화가 궁극적인 수단이자 목표인 작가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다니엘 리히터의 작품 세계를 조망해 볼 흥미로운 기회가 되었다.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작품들을 보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그림 속에 들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들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솔직히 작가의 그림들을 이해하며 감상하기보다는 그림 자체를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자꾸 관심을 갖고 보다 보면 어느 날 그림을 보는 눈이 트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위에 곁들인 작품 설명들은 전시관에서 받은 팸플릿에서 옮겨 적은 글들이다.

 

 

2층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1층 로비에 옹기종기 의자들과 통창 너머로 밖이 보인다. 넓지 않은 로비 한편에는 굿즈 상품도 전시되어 있다. 관람권을 제시하면 음료수가 20% 할인되는 카페 쿠폰도 있었으나 병원에서 마시고 나온 터라 패스.

평일 전시장에 다른 관람객은 없었고 홀로 그림 감상을 하는 약간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햇볕은 더욱 강렬해져서 그늘만 찾아서 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