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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 데 바스콘셀로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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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 데 바스콘셀로스

다보등 2022. 8. 28. 10:19

뜻밖에 책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책장을 정리하였고,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책을 많이 정리하였다. 그러고도 여러 번의 정리 끝에 책장에 남아있는 책은 별로 없는데 책장 한편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있는 걸 발견하였다.

"어머! 이 책이 언제 적 책인데 아직 있었네!" 

예상치 못했던 책을 찾아낸 나는 너무 반가웠다. 헌책방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책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우표 같은 증지(인지세)도 그대로 붙어있는 1987년 1월 20일 발행된 책이다. 35년이나 된 누렇게 변한 책은 삽화나 활자체에서도 정말 오래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을 손에 들고 이렇게 기뻐할 일인가 싶기도 하였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너무 유명한 책이고, 너무 잘 알고 있는 책이고, 그래서 내용쯤은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책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며 그래...제제... 제제였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 표지의 그림도 요즘 시선으로 보면 촌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한자로 적힌  '栗谷文化社' ... 낯설다. 

책 뒤 쪽에는 지은이 '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흑백 사진이 실려있다.

 

 

1987年 1月 20日 發行

요즘 책에서는 볼 수 없지만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책을 구입하면 책 뒤편에 이런 딱지가 붙어 있었다. 딱지에는 도장도 찍혀있다. 그 딱지를 '증지'라고 부르고, 공식적으로 발매된 책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출간된 책에 따라 들어오는 수입이라 인지세, 인세라 불렀고 요즘도 그 말이 쓰인다. 

암튼 잊고 있었던 '증지'에 대해서 추억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책 가격이 2,500원이다. 지금의 커피 한 잔 값도 안된다.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다.

 

 

 

 

1987년 당시 책 속의 삽화는 지금과는 너무 다르다.

이런 것도 새삼 재밌고 신선하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제제>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6살이 되려는 제제는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가족들로부터 멸시와 냉대, 증오와 매질만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실직이 길어지며 집안은 더할 수 없이 가난하기만 했다. 크리스마스 날 조차도 선물 한 가지 받을 수 없었던 제제는 '아기 예수는 부잣집 아이들을 위해서만 태어났는 가 보다' 하고 한탄했다.

 

'...... 모두들 말없이 식사를 했고, 아빠는 구운 빵을 조금 맛만 보셨을 뿐 면도도 하시지 않았다. 우리 식구들 중 새벽 미사에 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 슬펐던 일은 아무도 얘기하려고 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기 예수 탄생의 축복된 날이 우리 집에선 마치 추도식날 같았다.'/ p 57

 

 

상상력이 풍부한 제제의 대화 상대는 집 뒤 마당에 있는 라임 오렌지 나무인 밍기뉴이다.

제제는 자신이 가치 없는 악마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밍기뉴를 친구 삼아 마음속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멋진 자동차를 가진 포르투갈인 마누엘 발리다리스(뽀르또가) 아저씨와의 사랑과 우정.

제제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자신의 차에 매달린 제제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때려 망신 줬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유리에 발을 다친 제제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차를 태워 주며 급속히 친해진다. 제제는 마누엘을 포르투갈 사람이라는 뜻인 뽀르또가로 부른다. 이후 제제에게는 뽀르또가가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제제가 뽀르또가 아저씨랑 가까워지며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 하늘은 말할 것도 없을 만큼 푸르고 맑았다. 딘딘냐 할머니가 언제나 즐거움이란 <가슴속에 빛나는 태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그 말처럼 해는 모든 것을 행복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정말이라면, 내 가슴속의 태양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었다.' / p192

 

제제에게 사랑과 인생의 따뜻함을 가르쳐 준 아저씨...

어느 날 뽀르또가가 모는 자동차가 망가라띠바 기차에 부딪치는 사고가 난다.

갑작스럽게 뽀르또가와 이별하게 된 큰 충격을 받은 제제는 오랜 시간 심하게 앓는다. 

'...... 난 여전히 그의 환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커다란 웃음소리, 브라질 사람과는 조금 다른 그의 말소리, 창문 밖의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그가 수염을 깎을 때 나는 소리를 닮은 것 같이 들렸다. 그를 잊을 수가 없었다.

   난 이제야 마음 아픔이 무언지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아픔은 결코 까무라칠 만큼 매를 맞았을 때의 것이 아니었다. 발바닥에 박힌 유리조각 빼내느라 병원에서 가른 때의 살의 아픔 같은 고통도 아니었다.

이러한 아픔은 그곳 내 조그만 가슴으로부터의 것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아픔을 간직한 채 죽어가는 사람의 것일 뿐이었다.

   또 그 아픔은 양팔에 텅 빈 공허를 남기고 머릿속이 멍한 채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릴 힘조차 주지 않았다.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나는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여위어 갔다....' p 219-220

 

시간이 흘러 48세가 된 제제가 하늘나라에 있는 뽀르또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끝을 맺는다.

'...... 당신은 저에게 인생의 따뜻함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요즘도 전 가끔 딱지나 구슬을 어린이에게 나누어 주곤 합니다. 그건 따스한 정이 없는 인생이란 뜻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진심으로 사무치도록 그리운 뽀르또가 아저씨! 당신은 너무나 많은 온정과 사랑을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래 전,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슬프도록 아름다운 제제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뿐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과 이해, 용서가 아닐까?  그럼으로써 우리들 마음속에 라임오렌지나무가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인생에 있어서 슬픔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성을 갖고, 인생의 양면성을 발견하여 동심의 세계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꽃과 같은 화려함이 아니라 강물에 흘러내리는 낙엽과 같은 것이며, 또 사랑의 결핍이란 어른들의 상상력의 결핍과 감정의 메마름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