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본문
저자 ㅡ마르크 로제
윤미연 옮김
그레구아르 - 그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되었다. 지원자 가운데 80%가 합격한다는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떨어지고 곧바로 취업을 하였다. 근무를 할 직장은 '수레국화' 요양원이다. 전문성이 필요 없는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세탁장에서도 일을 하게 된다.
피키에 씨 ㅡ 모두가 그를 '책방 할아버지'라 부른다. 서점을 운영하던 피키에 씨는 파킨슨 병 진단을 받으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수레국화 요양원에 들어왔다. 가지고 있던 책을 처분하고 그 가운데 십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3천 권의 책만 가지고.
'우리 집엔 책이라고 할 만한 게 한 권도 없어요' 그레구아르는 학교하면 곧바로 책이 떠오른다. 단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나를 질리게 만들던 그 책들. 책방 할아버지는 나에게 책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결국엔 그 끔찍한 책을 읽는 것이 그래도 주방 일보다 낫다고 생각을 한 그레구아르는 주방에서 한 시간을 빼서 책방 할아버지에게 책을 읽어 드리기로 한다. 수레국화 원장인 마송 부인이 피키에 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책방 할아버지는 책과는 담을 쌓고 살던 그레구아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타인과 나누는 방법,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곁에서 독려하고, 때로는 운동 코치처럼, 낭독하는 기술을 훈련시킨다.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28호실, 파킨슨병과 녹내장 때문에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파키에 씨를 위해 큰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그레구아르의 낭독회는 점차 옆방의 할머니들에게로, 요양원 전체로 번져간다.
'소리 없이, 말썽 없이 죽어가는' 공간에 살아가던 노인들은 낭독을 통해 열광과 기쁨을 되찾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거주자들, 직원들, 방문자들 모두가 동시적인 공감으로 행복해한다.
마지막엔 그레구아르가 책방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300km밖에 있는 퐁트브로 수도원으로 길을 떠난다. 할아버지가 스무 살 때 첫 연인으로 삼았던 알리에노르 다키엔 조각상을 찾아가는 10여 일 일정의 도보여행이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다리가 되어 '둘이 함께' 긴 길을 걸어간다.
강물들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의 장관, 학교 수업에서는 지리시간이 그토록 지긋지긋했건만,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땅과 물을 보면서 나는 눈앞의 지리적 현상에 크나큰 감동을 느낀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는 피키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수도원 도착 하루전 날 피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와의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 수도원엘 들어간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뜻을 받드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ㅡ 작가 마르크 로제는 '책 읽어 주는 사람'으로 그레구아르는 작가 자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약 이십칠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책을 매개로 만나는 사람들과 이 이색적인 직업, 몇몇 소설 속에서나 일견 할 수 있을 뿐이었던 이 낯선 직업을 마르크 로제는 이렇게 정의한다. " 책은 혼자서 읽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 읽어주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문학은 인간적 접촉을 위한 하나의 구실이다. 북카페나 서점, 도서관, 요양원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접촉"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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