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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아리랑>/ 님 웨일즈, 김산 원작 본문

공연,영화,서적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아리랑>/ 님 웨일즈, 김산 원작

다보등 2023. 8. 18. 21:04

<아리랑>
님웨일즈, 김산 원작, 박건웅 만화
 
우연한 기회에  김 산(본명 장 지락)을 알게 되었고 그의 구술을 받아 적어 <아리랑>이란 책을 낸 미국인 님 웨일즈도 함께 알게 되었다.

김산을 검색하고 보니 더욱 아리랑이 궁금하다. 광명시에 있는 도서관을 검색하니 한 곳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집에서 먼 곳에 있는 도서관이라 일단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받아 볼 수 있게 상호대차로 대출 신청을 하였다.

이틀 후에 도서관에 도착한 책을 받고는 만화로 된 책이란 걸 알고 당황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므로.
광명시에 있는 크고 작은 10개의 도서관에서 님웨일즈의 <아리랑>은 이 책 한 권 만이 비치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읽어 볼 수밖에. 그런데 의외로 만화로 재현된 책은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원작을 영화로 보는 느낌이랄까.
 
 
<아리랑>은 미국 여성의 손을 빌린 김 산의 혁명 투쟁기이다. 비록 남의 손을 통해 활자화되었지만 그 내용은 열혈 청년,

불타는 젊은 혁명가 김 산의 인간애와 사랑, 꺼질 줄 모르는 조국애와 혁명의지가 고백체로 그려져 있다.
강렬한 인간정신의 부르짖음이라할까, 뜨겁고 숨 막히고 박진감이 넘친다.
책을 한번 잡으면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저자 님 웨일즈(1907~1997)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산을 세상에 알린 작가 님 웨일즈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저자 김 산(1905~1938, 본명 장 지락) 평북 용천 출생
김 산은 불꽃처럼 살다간 조선의 혁명가였다.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16세)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강성에 의해 반역자, 일제 스파이,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1920년~1930년대 김산의 활동무대.

 
 
님 웨일즈가 김 산(본명 장 지락)을 만난 때는 1937년 초여름 무렵이다.
당시 님 웨일즈는 중국공산당 대회 취재로 연안에 머물던 중이었다. 
잠시 짬을 이용하여 노산도서관에서 중국 관련 자료를 찾았다. 그런데 자기가 찾는 책들이 모두 어떤 사람에게 대출된 것을 알고 호기심에 수소문을 하게 된다.
그것도 영어로 된 책들이라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났다. 32세의 불꽃같은 혁명가 김 산과 30세의 냉철한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 그들은 첫 대화에서 의기가 통하여 김 산은 자기 사상과 활동내용을 영어로 구술했다. 님 웨일즈는 무려 두 달간에 걸쳐 이를 채록한 뒤 김 산과 헤어졌고, 1941년 뉴욕에서 <<아리랑>>을 출간했다.
참고로 김산은 님 웨일즈와 인터뷰를 하고 1년 후에 엉뚱하게 중국공산당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김 산'이란 이름은 금강산의 줄인 말로 그녀가 지어준 가명이라 한다.
영어, 독일어, 라틴어를 혼자 힘으로 익힐 만큼 머리가 출중했으며 많은 독서로 세상을 넓힌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님 웨일즈는 <아리랑>의 첫머리에서 김산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임시 문으로 사용하고 있던, 솜이 든 푸른색 커튼을 학자의 손처럼 야윈 손이 밀어 젖혔다. 그러자 실내의 조명을 받으며 크고 인상적인 사내의 모습이 조용히 나타났다.
그는 당당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인사를 하였으며, 악수할 때 주의 깊게 나를 응시하였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창문이 종이로 되어 있어서 충분한 조명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윤곽이 뚜렷한 그의 얼굴은 묘하게도 중국인 같지는 않았고, 반半스페인 풍의 사람처럼 아주 멋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가 유럽인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1930년 11월 광저우 봉기 기념행사 준비 회의에 참가하러 가던 김산이 베이징에서 국민당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김산은 일본경찰에 넘겨져 40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이듬해 4월 무죄 석방되었다. 일본경찰에 체포당했을 당시 김 산(장지락)의 인적사항을 적은 명패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김산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려났다.
 


 
님 웨일즈와 김산은 왜적의 식민지가 된 조선을 무척 사랑했다. 두 사람이 갖는 질량과 농도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시대정신에는 별로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그 이유의 하나는 책 제목이 '아리랑'이란 점 때문이다.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아리고 쓰렸으면 아리랑의 노래가 슬플 때나 기쁠 때이면, 국내나 해외 동포를 가리지 않고 불렀을까.

김산과 님 웨일즈가 도달했던 조선에 대한 사랑의 꼭짓점이 바로 이 노래였을 것 같다.

 

 
 
<아리랑>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불온서적으로 취급되어 접하기 어려웠다.
80년대 이후 해금되면서 일반에 보급되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우리는 선구적 지성인 '이영희 교수'를 떠올리게 된다. 선생의 술회에 의하면 본인은 50년대 후반에 일어판으로 된 이 책을 읽었고, 이념적인 갈증에 허덕이던 당시의 지식인들이 선생의 책을 빌려 몰래 돌아가면서 읽었다. 그런데 한번 나간 책은 그 후 20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어느 날 작가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너덜너덜한 상태로 돌려받게 되었다. 박경리 선생은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에 아리랑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사례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토지의 후반부는 중국과 만주에서의 전투적인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의 삶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는데, 박경리 선생은 이런 내용들을 <아리랑>에서 참고한 모양이다.
이 영희 교수는 그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미국의 동북부에 살고 있는 님 웨일즈와 서신 교환을 통해 간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선생은 이 책의 한국어판 추천의 글을 기술하였다.
 

 
 
1938년 김산은 그토록 원했던 조국의 해방을 끝내 보지 못하고
트로츠키주의자와 일본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했다.
 
님 웨일즈는 그와의 약속대로 2년 후 <아리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김 산의 동지이자 스승이었던 김충창(김성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들어가 국무위원을 맡았고
1969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가난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와 절친한 친구였던 오성륜은 만주에서 활동 중 일본 관동군에 체포되어 친일로 변절해 그동안의 투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해방 후 그는 옛 동지들에 붙잡혀 몽둥이로 맞아 숨을 거두었다.
 
김 산이 스스로 첫사랑이라고 말한 삼원보 장로의 딸 미삼은 경신참변 당시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광복 후 서울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김 산의 아들 고영광은 서른 살이 넘어서야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알았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김 산이 숙청된 지 50년이 지난 1983년 중국공산당은 장지락의 처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그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200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김산(장지락)에게 독립운동가 서훈을 추서 했다.
 
<아리랑>에서도 나오는 낯선 땅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조선인 열사들.
만약 김 산이 님 웨일즈를 만나지 못했거나 님 웨일즈가 <아리랑>을 책으로 출간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어떻게 김 산을 알았을까. 100년 전 중국에서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잊혀져간 우리 동포들의 뜨거운 삶이 오래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