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갑신년의 세 친구/안소영 지음 본문

공연,영화,서적

갑신년의 세 친구/안소영 지음

다보등 2023. 8. 30. 14:53

 

 

1884년 조선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조선의 앞날을 뜨겁게 고민한 젊은 개혁가들의 꿈과 도전을 그린 작품 <갑신년의 세 친구>

 

 

 

 

연암의 손자인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청년 개혁가들.

갑신정변의 주역들 홍영식과 김옥균 그리고 박영효

이 세 사람은 19세기 후반 세상을 바꾸고 조선을 근대화하려는 열망에 들뜬 청년들이었다.

 

그 옛날 연암 박지원의 사랑에서 외로운 서얼 청년들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는 가슴에 품은 이야기들과 조선 사회의 개혁에 관한 생각을 나누었다.

그로부터 백여 년 뒤, 연암의 손자 박규수의 사랑에도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오래된 흰 소나무가 서 있는 과수원 언덕 위 할아버지 연암이 지어 놓은 그 사랑채에.

박규수의 사랑에 모인 사람들은 앞날이 창창한 북촌 세도가의 청년들이었다. 바로 훗날 갑신정변의 주역이라 불리는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이다. 세 청년은 스승과 함께 급격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개혁의 길을 적극 모색했다. 그러나 자신감과 패기로 가득했던 갑신년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포부를 끝까지 실현할 수 없었고, 목숨 걸고 일으킨 정변마저 실패하여 뼈아픈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갑신년 정변 무렵 세 청년은 뜻을 같이했던 친구들이었으나, 일생을 두고 보면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정변이 실패하던 그 날, 홍영식은 끝까지 왕을 따르다 살해되었다.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은 그곳에서도 조선의 개혁을 위해 애썼지만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세 친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영효는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일본이 내린 후작 작위를 받고 영화를 누리며 살아갔다.

젊은 날 품었던 고귀한 뜻을 꺾고 권력을 쫓는 박영효의 말년이 그저 옛일로만 여겨지지 않아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사람이 한평생을 일관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갑신년의 세 친구>는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 속 인물들의 고뇌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근대화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역사를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 청년 국왕이었던 고종은 박규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또래의 청년들과 더불어 조선의 개혁을 고민하였는 바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잘 알고 있었으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힘을 기르고자 노력했으나 기울어진 나라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끝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어리석고 무능한 인물이었다는 일본의 평가가 그대로 굳어지고 만 불운한 왕이다.

 

1884년 전후는 동아시아 전통 사상과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적 사상이 서로 맹렬히 부딪치는 시기, 소용돌이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조선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깨달아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균형을 잡고 주체적인 모색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본의 속내는 조선이 쇄국의 빗장을 풀어 일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고 장차 중국으로 가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지만, 제도와 문물을 개혁하여 부강을 이루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고종 21),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청나라에 분노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정변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왜 가닿지 않았을까.

끼리끼리 찾아 다니는 걸음은 분주했지만 정작 백성들에게 진심을 알리고 설득하는 데는 소홀했던 게 아닐까.

도성 안 골목마다 괘서*라도 붙여 자신들의 뜻을 알렸더라면......

대궐 안 젊은이들이 백성들에게 알린 것이라고는 조정 각료들이 바뀌었다는 방문*뿐이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이 변란은 벼슬 다툼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벼슬을 탐하는 새파란 젊은이들이 일본을 등에 업고 나라를 팔아 넘기려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p 237)

*괘서 :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어 건 글

*방문 : 어떤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

 

연암과 손자 박규수의 사랑은 없어졌지만 흰 소나무는 지금도 서울 종로구 제동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오래된 나무의 잎이 해다마 다시 푸르게 돋아나듯 청년들의 새로운 삶도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

젊은 실학자 이덕무와 벗들의 삶,

개혁을 꿈꾸던 김옥균과 친구들의 삶,

그리고 서울 종로 거리를 지금도 오가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

흰 소나무집 사랑방에서처럼, 세대와 세대가 어우러지는 만남 역시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갑신정변, 3일 천하

국사 시간에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조선의 정세가 너무 암울하여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