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백석(白石) 詩集 '사슴' 본문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으로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아호에는 '백석(白奭)'과 '백석(白石)이 있었는데 작품의 대부분에 白石을 사용했다.
백석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 <사슴>은 출간 당시 백석이 선광인쇄소에서 100부만 찍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기 때문에 소장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시인 윤동주도 백석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백석은 8.15해방을 맞이하고 고향인 정주에 자리 잡았다. 파블렌코, 푸시킨 등의 러시아 문인들의 작품을 번역하여 출간했고, 작품 활동 또한 꾸준히 해왔다고 전해진다. 이후 백석의 생사여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숙청당해 1963년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1996년까지 농사꾼으로 살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현재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억에서 잊혔던 시인 백석은 해금 이후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인 백석의 시는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차도 막대꼬치도 기왓장
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
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
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오리 : '오라기'의 방언
*니빠디 : '이빨'의 평안도 방언
*짚검불 : 마른 짚
* 짗 : '깃'의 방언
백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유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데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 뱁새
*마가리 : '오막살이'의 평안북도 방언
고향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관공 : 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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