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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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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평원에서 진시황제를 만나다/김영칠

다보등 2023. 7. 19. 09:04

당나라 때는 장안長安, 지금은 시안西安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주와 진, 당 등 열세 개의 왕조가 있었고 70여개의 왕릉이 남아 있다.

지금 중국 시안으로 여행을 간다면 진시황제나 병마용갱, 당헌종과 양귀비를 떠올리게 하는 고도이다.

나는 2014년 7월 시안엘 갔었다. 병마용갱에 들어서며 그동안 많은 자료들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막상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상상초월이었고, 엄청난 병마용들과의 강렬한 만남은 감탄사마저 잊어 버리고 온 몸이 떨렸던 기억이 난다. 2200년의 시간을 깨고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우렁찬 함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그때의 놀라움과 감동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어제인 듯 여전하다. 

도서관에서 중국한시에 관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내가 갔다 온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빌려왔다.

아래는 2014년 중국 실크로드 신장자치구 여행의 첫 시작을 시안에서 하였다. 그때 다녀온 병마용갱이다.

https://whdms26.tistory.com/17189912#none

 

 

 

관중평원은 어떤 곳인가?

중국대륙의 지형적인 특징은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 이른바 '서고동저'의 현상을 띄고 있다. 서쪽으로 갈수록 높아져서

'세계의 지붕'을 이루고 동쪽으로 향할수록 차츰 낮아지고 큰 강을 따라 드넓은 평원이 발달했다. 이와 같은 지형의 영향으로 만주일대는 동북평원,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화북평원, 양자강 일원의 양자평원, 그리고 시안을 둘러싼 관중평원 등 네 곳이 특별하다.

'관중關中'이란 네 곳의 관문이 지키는 한가운데라는 뜻으로 서쪽의 대산관, 동쪽의 함곡관, 남쪽의 무관, 북쪽의 소관을 말한다.

 

 

 

 

김영칠 작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시안에서 진시황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당헌종과 양귀비, 그리고 백거이와 이백,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모두 만나게 하고 있다.

또 시안 장안성내의 북문 근처에 숨겨진 혁명의 불꽃 팔로군 기념관이 있으며,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 시절에 비밀기지로 운영하던 건물들을 방문하여 소개하고 있다. 팔로군은 '국민혁명군제8로군'의 약칭이다.

팔로군 기념관에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주더 등, 중국혁명을 이끈 주요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작가 김영칠 님은 그 중 눈이 가는 몇 사람을 주목해 소개해 놓았다.

나는 또 그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 있었다.

님웨일즈와 조선인 혁명가 김 산이다.

 

 

 

 

님 웨일즈(Nym wales,1907~1997)에 대한 소개였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이기도 하며, 부부가 다 함께 언론과 저술을 통해 중국혁명을 적극 도왔다.

대장정으로 가장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었기에, 중국정부로서는 이 미국여인을 극진히 대우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 투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서술로 명성을 얻었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

 

나는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을 예전에 읽었었다. 

에드가 스노우는 서방 세계에 최초로 중국공산당을 알린 기자로, 1936년 초, 서방 기자로는 최초로 중국공산당 본부가 있던 산시성의 바오안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4개월간 머물면서 홍군병사들의 활동과 마오쩌둥을 밀착 취재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듬해 <<중국의 붉은 별>>을 출판하였다. 책이 나오자 그동안 단순히 비적으로만 알려졌던 마오쩌둥 세력의 실체가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두 세력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중국의 실상이 정확하게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본명이 헬렌 포스터 스노우인 님웨일즈를 우리가 한국인이라면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여인이 격동의 시대에 우리 조선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 조선, 강대국의 침략에 희생양이 되어 짓밟힌 전경이 그녀로 하여금 아픈 진실의 고발자가 되게 만들었다.

그는 조선의 현실을 알기 위해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여행하였고,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녀은 우연히 조선출신 혁명가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감동한 나머지 그의 구슬을 받아 적었고, 이 자료로 혁명수기 '아리랑의 노래'를 펴내게 된다.

그녀가 만난 사람은 「김 산」(金山, 1905~1938)이었다.

김 산이란 이름은 금강산의 줄인 말로 그녀가 지어준 가명이라 한다. 본명이 '장 지락'인 김 산은 평북 용천 출생이다.

영어, 독일어, 라틴어를 혼자 힘으로 익힐 만큼 머리가 출중했으며, 많은 독서로 세상을 넓힌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김 산은 불꽃처럼 살다간 조선의 혁명가였다. 일본, 만주, 베이징, 광동, 연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16세)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강성에 의해 '반혁명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1983년 중국공산당은 김 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자격을 회복시켜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5년 광복절에 김 산에게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한바 있다.

 

 

 

미국 여성의 손을 빌린 김 산의 혁명 투쟁기.

광명시 도서관을 검색해 보니 한 곳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동녘출판사(2020)에서 '아리랑'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었다.

상호대차로 대출 신청을 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