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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조르바와 춤을 -홍윤오 지음 본문

공연,영화,서적

조르바와 춤을 -홍윤오 지음

다보등 2023. 4. 9. 07:47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그리스 여행기 <조르바와 춤을>, 홍윤오 지음

 

 
언젠가 책이름을 메모해 놓았던 책이다. 어떤 연유로 메모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서관에 검색해 보니 책은 대출 중이었고, 예약을 해야했다. 보름만인가 책을 대출해 왔다.
조르바와 함께한 그리스 여행기라는 부제를 보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적이 있고 '조르바'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긴 책이었다.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리스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 어려운  거창한 내용의 책은 아니었고 쉽게 읽히는 책이라 좋았다. 저자가 직접 차를 렌트하여 다닌 그리스의 여행 루트도 맘에 들었다. 요즘은 여행에 관련된 티비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던데 그런 느낌이었다. 
책에는 저자가 찍은 사진들도 많지만 직접 그린 그림들이 간간히 실려있다.
사진만으로 나열된 여행기보다 그림을 곁들인 유적지와 소소한 골목 풍경이나 무심한 듯 항구 그림들이 있는 것들이 맘에 들었다. 
 
'사진으로 찍어와 나중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현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미쳐 보지 못했던 대상이나 풍경을 나중에 그림을 그리면서 발견하는 것이다. 발견 정도가 아니라 뒤늦게 나의 가슴에, 마음에 속속 들어와 박히는 느낌이다...' 
저자는 여행을 다녀온 후 일부러 풍경 스케치를 공부해서 여행지 모습을 직접 그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언젠가 보았던 서양미술 관련된 책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런 말을 했다.
"스케치북을 한 시간 반 만에 다 채웠다. 나는 그 후에 울타리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림으로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풀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을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가 보다.

 

파르테논 신전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는 유적지 느낌이 좋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

 
조르바는 책과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 인물이 됐다. 수많은 여행객이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보러 온다.
 
I hope for nothing(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I fear nothring(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I am free(나는 자유다)
조르바가 죽기 전 외쳤던 그 세 마디. 묘비에 남겨진 그 세 마디가 그날따라 자꾸 내 가슴을 두드렸다.
ㅡ 본문 중에서
 
나는 행복했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볼 때에만 우리는 갑자기 -이따금 놀라면서 -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마침 아침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배는 고동을 울렸다. 내 짐을 실은 거룻배 사공이 내게 손짓했다.
"하느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자, 갑시다!" 내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조르바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는 몸을 굽혀 산투르를 집어 옆구리에 끼고는 문을 열고 먼저 나갔다.
니코스 카진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저자 홍윤오 님의 <조르바와 춤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곳곳에서 신화를 마주하고, 곳곳에서 조르바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절로 일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다.
평범한 도시인이자 식자층인 '나'는 선창가 카페에서 우연히 조르바를 만나 묘한 매력에 빠진다.
두 사람은 함께 크레타섬으로 가서 '나'는 투자하고 조르바는 인부를 모아 광산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다 사업이 망하고 조르바와 '나'는 헤어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조르바의 생각과 삶의 철학, 예술, 그리고 시대적, 역사적 배경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떠올리게 하고, 사유의 폭을 넓게 해 준다.
조르바를 한 단어로 푼다면 바로 '자유'가 아닐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관념과 가식적 격식을 깨는 자유!


저자는 당시 그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 홀로 길을 나선 다른 여행과 달리 이번 그리스 여행은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겠다는 자세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스 곳곳에서 조르바를 만나며 내 처지보다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깨닫는다. 나의 인생은 나름 선택받은 인생이었다고.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나 늘 다른 길이 열렸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절망 속에서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아직은 암에 걸린다거나 팔다리가 어디 한 군데 부러진 일도 없다. 외모도 크게 잘난 건 없지만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내일모레면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산에도 곧잘 다닌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힘들고 외로울 때 함께 술잔을 기울일 친구도 몇이나 있다.
몸에 맞지 않는 큰 모자, 큰 옷을 입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누가 보더라도 몸에 비해 소박한 모자와 옷이 낫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채 여유 있게 일하는 것이 낫다. ㅡ본문 중에서

새벽이 되기 직전 갑자기 그 께느른한 행복감을 뚫고 조르바가 꿈에 나타났다. 그가 무슨 말을 했던지, 왜 왔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깨었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까닭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와 더불어 크레타해안에서 지냈던 생활을 다시 짜 맞추고 싶었다. 기억을 다그쳐, 조르바가 내 마음속에 흩뿌린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그러모으고 싶었다. 그것을 살려놓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