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본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 책을 도서관에 예약대출을 5월 초에 했더랬다. 한달도 더 지난 6월 중순 쯤에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연락이 왔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책이라 도서관 문자를 받고도 뭐지? 싶었던 책이다.
(아! 그 즈음에 또 한권의 예약해 놓은 책이 생각이 났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
이 책은 언제쯤 연락이 올런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다 읽고나서 연락이 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다.
프롤로그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술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독백을 들을 때마나 나는 그 평온하고 쓸쓸한 무드에 젖어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슬픈 꿈을 꾸었느냐?"
나는 막막했다. 그리고 그리웠다.
울고 있는 내게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주는 이가, 그런 스승이.
죽음을 옆에 둔 스승과 마주 앉은 열여섯 번의 화요일, 이어령과 김지수의 '라스트인터뷰'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목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선생님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고, 나는(김지수 기자)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되었다.우리는 사전에 대화의 디테일한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고,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을 꺼내 놓았다. (중략)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의 시한부 삶이 그의 입술 끝에 매달려 전력질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가 소크라테스와 필록테테스와 니체와 보들레르, 장자, 양자 컴퓨터를 넘나들며 커브를 돌 때마다, 그 엄청난 속력에 지성과 영성이 부딪혀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수습해도 남은 인생이 허기지지 않을 것 같았다.-프롤로그에서-
<본문에서>
그래서 외로웠네
"나를 아는 사람들, 동료들, 제자들은 나를 다 어려워했어. 이화여대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5~6백 명 좌석이 꽉꽉 차도 스승의날 카네이션은 다른 교수에게 주더구만. 나한테는 안 가져와. 허허.
섭섭했지. 강의실 인기는 대단했어. 단연코 월등했지. 나 배곯는 건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아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과는 달랐다. 내 강의에 영감을 받고 내 글을 사랑해줬지만 스승의날 나에게 꽃을 들고 찾아오고 싶다는 친밀감은 못 주었던 모양이야. 그건 뭐랄까...
그래서 외로웠네." (90)
중력을 거스르고 물결을 거슬러라(111)
-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 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다.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대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고민해야 한다네. 다만 ,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걸 말야.-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126)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컵에 달렸으니 컵의 것이겠지만, 또 컵의 것만은 아니잖아. '나 잡아 주세요'라는 신호거든.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그런데 또 한편 컵에 손잡이가 아니라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해봐. 갑작스럽게 내 것이 되잖아. 같은 사물인데도 달라지는 거야. 유일해 지는 거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거야. '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엄마의 세계로 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156)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 그러다 부르면 화들짝 놀라서 원위치로 가는거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거라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 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157)
스승의 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라네."
"그래, 이 시대는 핏방울도 땀방울도 아니고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네. 지금껏 살아보니 핏방울 땀방울은 너무 흔해. 서로 박터지게 싸우지. 피와 땀이 싸우면 피눈물밖에는 안 나와. 피와 땀을 붙여주는 게 눈물이야.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울려야 천 리를 달리는 한혈마가 나오는 거라네."(213)
에필로그에서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자신도...분명히 내 것인 즐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한국의 지성의 큰 산맥이었던 이어령. 22살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에 비수를 꽂는 선전포고문 <우상의 파괴>로 유명 인사가 된 이후, 65년간 때로는 번뜩이는 광야의 언어로 때로는 천둥 같은 인식의 스파크로 시야의 조망을 터주었던 언어의 거인, 벼랑 끝에서도 늘 우물 찾는 기쁨을 목격하게 해준 우리 시대의 어른 이어령.
그는 2022년 2월 26일 향년 89세로 그가 말하던 '이제 그만 놀고 오라는 엄마의 세계, 어머니의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을 하였다.
'공연,영화,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 랑겔한스섬의 오후 (0) | 2022.07.17 |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0) | 2022.07.07 |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석가모니 고행상 (0) | 2022.06.24 |
참 좋은 영화 <자산어보> (0) | 2022.06.18 |
일본 영화 <모리의 정원>/넷플릭스 (0) | 2022.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