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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석수역~서울대 방향) 서울둘레길을 걸었다 본문

가족과 함께~*

추석 연휴 (석수역~서울대 방향) 서울둘레길을 걸었다

다보등 2024. 9. 20. 07:03

추석 연휴 마지막날 남편과 아들, 손자와 함께 석수역에서 서울대(관악산공원)로 이어지는 서울둘레길을 걸었다.

어쩐 일인지 손자가 선 듯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사천리로 출발을 하였다.

원래는 서울대(관악산공원)에서 시작할까 하였는데 손자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걷기 위해 석수역에서 출발하여 서울대방향으로 잡았다. 이렇게 하면 오르막이 최소화되어 걷기가 좀 수월하다.

날씨는 여전히 덥고 연신 폭염경보 안전문자가 오는 날이라 땀으로 범벅이었으나 손자도 아들도 뚝심 있게 잘 걸었다.

명절 때 이것저것 맘껏 먹은 것들 땀으로 다 빠졌을 거라 생각하니 개운하다.

 

마치 가을인가 싶은 길을 지나 데크를 이용

 

호압사
호압사 약사전

 

 

호압사까지는 아들과 손자가 처음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여러 번 온 적이 있으나 호압사를 경유하여 서울대방향으로는 처음이다. 서울대 방향으로 하산하다 보면 '삼성산 성지'를 지난다. 

아들과 손자가 궁금해 하니까 잠시 들르기로~

삼성산 성지는 '교황청 승인 국제순례지'란다. 천주교서울순례길 코스로 명동대성당(1)을 시작으로 삼성산 성지가 24번째로 마지막 구간이다.

 

 

 

삼성산 성지 :  기해박해(1839)때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과 성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 성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의 유해가 58년간 안치되었던 곳이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세 분의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로 나아가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1839년 9월 21일 사형을 당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20여 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교우들의 노력으로 노고산(지금의 서강대 뒷산)에 임시 매장 되었고, 1843년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삼성산에 58년간 안장되었다.

 

 

1901년 박 바오로의 아들 박순집 베드로의 고증으로 세 성직자의 유해가 발굴되어 명동대성당 지하 성지 묘역으로 옮겨졌다. 세 성직자는 1925년 7월 25일 시복 되었으며 1970년 오기선 신부에 의해 삼성산이 세 성직자의 매장지였던 곳으로 확인됨에 따라 같은 해 5월 12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및 박순집 베드로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를 세우고 축성하였다.

 

 

한국 천주교회 전래 200주년이었던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103위 순교자가 시성되자 이를 기념하여 서울대교구에서 묘지 부근의 땅 약 1만 6천 평을 매입, 1989년 명동성당에서 성인 유해를 일부 옮겨와 안치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이후 성지는 관할 본당인 삼성산 성당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세 분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미사가 이분들의 순교일인 9월 21일을 기억하며 매달 21일에 봉헌되고 있다.

 

 

 

유아숲체험 구간을 지나고...

 

 

 

관악산공원 입구에 있는 정상 사진 앞에서 인증~ㅎㅎ

 

서울대

 

서울대 정문에서 8507번을 타고 집앞 버스정류장에 하차~

우리 집 기준으로 접근성이 완전 편리한 석수역~서울대까지 서울둘레길 구간이다. 

난이도 下이면서 제법 매력적인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