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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안내를 부탁합니다 / 폴 빌리어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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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부탁합니다 / 폴 빌리어드

다보등 2024. 7. 19. 01:57

잔잔한 감동이 있는 산문이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친숙한 내용들이고 짧은 글이라 읽는 것도 부담없고 읽는 내내 행복했다. 글 내용은 적당히 자르긴 하였지만 대부분 그대로이고 필사를 하듯 자판을 두들겨 옮겼다. 

 

어린 시절 시애틀에 살 때 우리 집은 동네서 전화가 있는 몇 안 되는 집이었다.
2층 계단 옆 벽 아래에 붙어 있던 윤이 나는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전화기를 기억한다. 캔 우드 3105였던 전화번호까지 기억한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키가 작아서 전화기가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전화기에 대고 말씀하시는 게 신기해서 전화하는 내용을 듣곤 했다.
이 신기한 상자 안에는 신비한 사람이 사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내를 부탁합니다'였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였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의 전화번호를 물어도 그녀는 척척 대답해 주었고 우리 집 괘종시계가 고장이 났을 때도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주었다.
어느 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지하실에서 혼자 연장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찧었다. 너무 아팠지만 집에는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울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2층 계단 옆에 있던 전화기를 발견하고 발 받침대를 가져와 딛고 전화기를 집었다. 
"몇 번 바꿔드릴까요?"
나는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한두 번 찰칵하는 연결음이 나더니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안내입니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손가락을 다쳤어요. 아파요. 엉엉."
이제 누군가가 듣는 다는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집에 엄마가 안계시니?"
"나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그녀가 물었다. "냉장고를 열 수 있니?" 내가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녀는 "위칸에 있는 냉동실에서 얼음 조각 몇 개를 꺼내 손가락에 대고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 울지 말고. 곧 괜찮아질 거아."
그 후 내가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항상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만능 해결사였다.
필라델피아가 어디 있는지, 오리노코 강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석탄을 담는 큰 통 안에서 새끼를 낳았을 때는 며칠 동안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도 일러주었다.
사랑하는 카나리아 패티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전화를 걸어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깊이 상심한 것을 알고는 다정히 말했다.
"폴, 그 새가 노래 부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그 말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동부로 이사 갈 때 새로 이사 가는 집의 전화기 안에 그녀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그녀에게 작별 인사도 못했다. 십 대가 되어서야 전화기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되었다. 결혼한 누나는 다시 옛날 시애틀에서 우리가 살던 캔 우드 가까운 동네에 살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시애틀에 사는 누나를 며칠 동안 방문하기로 하였다. 누나가 사는 동네의 전화국도 캔 우드에 있었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들자 수화기에서 "몇 번을 바꿔드릴까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 목소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안내입니다."
시간의 간격이 전혀 없었고 공간도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 그대로인 것처럼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존슨부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존슨부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존슨 씨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래서 폴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을 때 마치 내 아이 대신인 것 같은 마음이었단다.
서가에는 책들이 잘 정돈되어 꽂혀 있었다. 존슨 부인은 늘 폴이 다시 전화 걸기를 기다렸고 아이가 무얼 물을 지 몰라 이것저것 그 또래 아이들이 궁금해할 것을 찾아 책을 사다 날랐다고 한다. 
폴은 학기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겠다 약속하였고 몇 달 후 나는 다시 시애틀에 돌아왔고, 제일 먼저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샐리 존슨 부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샐리의 친구입니까?"
"오랜 친굽니다."
"미안합니다. 샐리는 5주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샐리가 마지막 출근하던 날 당신에게 전해줄 메모를 남겼어요. 여기 당신이 다시 전화를 걸면 읽어주라고 한 메모지가 있답니다."
"뭐라고 씌어 있는데요?"
"아, 제가 읽어드리지요. '폴에게 말해줘요. 나에게는 아직도 노래를 부를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고. 그러면 폴이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나는 그 목소리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물론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실린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대출해 왔다. 
폴 빌리어드는 열네 살 나이에 혼자 세상에 뛰어들어 공학자이자, 수의학자이자, 생태연구가이자, 작가가 되었다.
1910년에 태어난 폴 빌리어드는 주로 뉴욕 주 소거티스라는 작은 도시에 살며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74년 타계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이해의 선물>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익숙한 내용이다. 
폴은 어머니와 시내에 나갈 때마다 사탕가게에 들러 사탕을 사던 경험으로 혼자서 사탕가게에 가게 된다.
종이 봉지는 골라 담은 사탕으로 그득했다.
"이것을 살 돈은 있니?"
나는 대답했다. "그럼요. 돈 많아요." 나는 주먹을 펴서 위그든 씨의 손에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올려놓았다.
"모자라나요?"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한숨을 쉬고 대답하셨다. "아니다,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스름돈을 주마."
계산대 서랍을 열고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벌린 내 손에 올려놓았다.
 ......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떤 계기로 그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고 그 일의 여파가 내 삶 속으로 밀려왔다.
나는 결혼하여 열대어 가게를 운영했다. 
꼬마 아이 둘이 가게에 왔다. 여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와 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아이였다. "와아! 예쁘다. 몇 마리 살 수 있지요?"
"물론 살 수 있지. 그런데 아주 비싸단다."
"돈 많아요. 아빠가 생일 선물로 줬어요."
아이는 내 손바닥에 5센트짜리 동전 두 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아이들이 고른 물고기 가격에 턱도 없는 돈이었다. 그 순간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사탕 향기가 향수(鄕愁)가 되어 내 콧잔등을 스치는 것이었다. 
"돈이 모자라요?"
"아니, 조금 남는걸. 거스름돈을 주마."
나는 아이의 손에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물고기가 든 비닐봉지를 가지고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려왔다.
 
 
이 책은 한 개구쟁이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체험했던 삶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자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없는 이야기도 있고, 때론 아픈 이야기도 있지만,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모든 이야기는 작가인 폴 빌리어드의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 책의 원제는 'Growing Pains(성장통)'이다. 저자는 자기의 이야기를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며 책의 제목을  'Growing Pains'라고 했다.

 

 

 

'이해의 선물'로 시작하여 '이해의 시작'으로 책은 마무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추억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시작하여 14살 어린 나이에 혼자 세상에 뛰어 든 이야기는 '이해의 시작'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아버지를 이제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된 폴은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버지 방식대로 세상을 사셨다. 다르게 사는 방법을 모르셨다.

이제 진정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게 느낀 점은 폴이 무언가를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용돈을 모아서 산다던지 어떤 잘못을 저질러 변상해야 하는 게 있으면 용돈으로 갚아 나가고 일(심부름 같은 가벼운 일)을 해서 갚게 하였다.
 예를 들면,
햄필씨 약국에서 트로키(아이들이 먹기 좋게 만든 드롭스로 만든 감기약)를 훔쳐 먹고, 그 훔친 것에 대한 벌을 받기로 하였다.
햄필 씨는 "일주일 동안 방과 후에 약국에 들러서 청소를 하면 어떨까? 일주일 동안 약국의 안과 밖을 깨끗히 청소해야 한다, 알았지?" 
어머니는 "그리고 2주 동안 네 용돈으로 크로키 값을 갚아야 한다."
 
너무 갖고 싶은 낚싯대 가격이 9달러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걸 사줄 만한 돈이 없다.
가게 주인은 폴에게 가게에서 심부름을 하는 걸 제안하였다.
"방과 후에 배달을 하는 거야. 배달 한 번에 5센트씩 주마. 9달러가 모일 때까지 그 일을 하면 어떨까?"
어머니는 내가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네 바지와 신발을 다시 사주는 대신 그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용돈은 반으로 줄인다. 불만 없지?" 하는 식이다.
 

이 책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추억과 회상에 잠기게 할 뿐만 아니라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가족이나 이웃과의 인간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