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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단편소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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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단편소설

다보등 2024. 8. 11. 07:51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정지아 작가는 태어나보니 빨치산의 딸이었다. 

정지아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빨치산으로 뛰었던 '지'리산과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뛰었던 백'아'산에서 따온 거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정지아의 또 다른 이름 고아리도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의 백'아'산과 어머니의 지'리'산에서 따왔다.

정지아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어머니 역시 지리산에서 활동하던 남부군이었다. 

고아리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을 맞으면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삶을 다시 조명하게 된다.

분명 심각한 내용들이고 서글프지 않은 일화가 없는데 읽다 보면 실실 웃음이 난다.

'긍게 사람이제',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의 십팔번이다.

 

어린 시절 빨갱이에 대해 학교에서건 어디서건 날이면 날마다 귀에 목이 박히도록 반공방첩을 외치던 시절이었고  어린 나는 빨갱이는 정말 빨간 사람인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빨갱이 이런 단어들은 금기어라 헛투루 입에 올릴 수 없던 무서운 단어였는데 그 시절이 먼 옛날 같다.

그런 시절을 지나온 빨갱이 딸 정지아의 삶은 어땠을지 짐작도 안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속에서 옮긴 문장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 씨는 이십 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자본주의의 중심 서울로 향하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심지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향에 터를 잡았다./8

 

아버지는 왜 하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언젠가 물었더니 의아한 얼굴로 아버지가 되물었다.

"글먼 고향 냅두고 워디로 간다냐?"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전장이기도 했다./136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을 평생 원망한 작은 아버지,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의 원수였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 때문에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아버지 때문은 아니었다. 여순사건이 나고 14연대가 지리산으로 입산한 뒤 행여 빨치산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거나 도움을 줄까 봐 산골 마을들은 다 소개당했다. 빨갱이였던 아버지 집만 소개당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국민학생이었던 작은아버지가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친척집을 전전하게 된 건 다 시절 탓이지 아버지 탓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작은아버지는 집안이 망한 것도,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도, 할아버지가 군인 손에 죽은 것도 다 아버지 탓이라 여겼다. /35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반대인 아버지의 절친,

아버지는 새벽에 가서 신문보급소의 일을 거들고 공짜 신문 한부를 얻어 왔다.

박선생도 그 사실을 알았다.

"글먼 따신 집 안에 가만있제 먼 옘병한다고 새복 댓바람부텀 설치고 댕기냐, 영감탱이가. 글다 풍 맞는다이."

(......)

아버지는 박선생이 정기구독하는 조선일보가 못마땅했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평생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면 경을 칠 탱게."

두 노인네는 매일 아침 투닥거리며 늘그막을 보냈다.

신문을 들고 집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앞에서 평생 교련선생 한 놈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박선생 흉을 보았다.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붙어 노느냐고 물어보면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 47

 

"이따 또 올라네. 아적 아무헌티도 안 알렸네. 알리고...... 항꾼에 또...... 올라네."

항꾼에, 올라네. 말 사이의 짧은 침묵이 마음에 얹혔다. 저런 말이 하염없이 인생을 살았던 한 남자의 애틋한 정일지 몰랐다. 오늘 새벽에도 그는 신문보급소에 들렀을까? 어제까지 농을 주고받던 친구 없이 /50

 

큰집 길수오빠가 허적허적 걸어오고 있었다. 위암 말기인 오빠는 동식씨 말마따나 낼모레 아버지 뒤를 따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완연했다. 지난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기 직전 오빠는 부군수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빨갱이 작은아버지를 둔 덕분에 육사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 오빠 앞길을 막은 게 큰어머니는 세상 떠날 때까지 천추의 한이었다. 오빠는 마음이 어땠을지 모르나 겉으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77

몇 년 뒤, 연좌제가 풀리고 오빠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고상욱이 본 사람 손 들어!"

군인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불린 순간 여덟 살이었던 큰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언니는 직감적으로 고상욱이 작은삼촌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

그런데 언니보다 키가 작아 두줄 앞에 앉아 있던 작은아버지가 번쩍 손을 들었다.

"고상욱이 우리 짝은성인디요! 짝은 성이 문척멘당위원장잉마요."

면당위원장은 면에서 제일 높은 사람, 작은아버지는 형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126

 

아버지의 담배친구 열일곱살 노랑머리 소녀

"우리 아버지를 알아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는데요?"

"......담배 친군디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든 넘은 아버지와 담배 친구라니.

"어쩌다가......"

"교복 입고 담배 피우다가 할배한테 들케가꼬 꿀밤을 맞았그마요. 양심 좀 챙기라대요. 최소한 교복은 벗고 피우는 것이 양심이라고......"

(......)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애들은 천날만날 놀리기만 했는디......"

엄마가 베트남 출신인 모양이다./140

 

떡집언니,

언니는 구례서 떡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떡집 언니라 불렀다. 언니는 어머니 동료의 딸이다. 연락책이었다는 떡집 언니 어머니는 입산을 하지 않아 구속을 면했다.  그이가 죽고 난 뒤 떡집 언니는 내 어머니를 당신 어머니처럼 모셨다.

어머니에게는 딸보다 더 딸 같은 사람이었다. 

 

주인공 대신 아들 노릇을 했다는 학수,

열셋에 아버지를 찾아 입산했다는 소년 빨치산이었다. 산에서 부모와 형제를 다 잃고 열다섯에 붙잡힌 그는 비전향장기수로 무려 37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1989년 풀려난 그는 반내골로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와 같은 남부군 소속이었다.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되는데, 한 번으로는 끝내 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197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자식을 원한다 표현한 적이 없었고 내게 서운하다거나 모자라다거나 하는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224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안 묻고 뿌릴랑가?"

"뿌래삐리랬다니까."

학수도 움켜쥔 손을 허공에 치켜들고 가만히 주먹을 풀었다. 바람은 일정하게 불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골은 이리로도 저리로도 날아가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바람만이 알겠지./258

 

아이가 피식 웃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셋은 항꾼에 담배를 피웠다. 항꾼에,라는 말이 두고두고 참 좋았다.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