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봉화길 제8길, 자채방앗길(부발역~설성면행정복지센터)下 본문
마당에 널어놓은 콩이 무슨 콩인지 궁금한 채 양화천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오늘은 해를 마주하고 걷는 게 가장 고역이었다.
멀찌감치 앞쪽으로 정자가 보인다. 짐작으로 무우정이란걸 알아챘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갔다가 무우정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되돌아 나와 양화천 둑방을 따라 직진해야 하는 길이다.
자칫 길을 놓칠 수 있는 곳이다. 스탬프 때문에라도 필히 들러야 하는 지점이다.
무우정 입구에는 사적비와 봉화길 스탬프함이 있다.
사적비는 사라진 무우정을 자비로 새로 세운 김병일이라는 분의 고향사랑을 칭송하는 비이다.
봉화길 8길 첫 번째 스탬프를 찍고 무우정으로 올라갔다.
<무우정 이야기>
조선조 선조 때 경상우도 순찰사를 지낸 군량리 출신의 이성임(李聖任)이 처음 지었는데, 이성임은 용모, 가성, 언어, 필한, 문사가 모두 옥처럼 깨끗하여 당시 사람들이 오옥(五玉) 선생으로 불렀다는 인물이다.
그 후 이성임의 6세손인 이사성(李思晟)이 이인좌의 난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처형되는 바람에 무우정까지 헐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의 정자는 군량리 출신으로 고향 가꾸기 사업을 벌여 군량리의 많은 역사와 민속을 복원한 김병일이 사재를 들여 1981년 예전의 자리에 다시 중건한 것이라 전해진다.
블친인 순리대로님이 무우정이야기판이 오염이 심하여 글을 읽을 수가 없어서 물티슈 열 장은 사용하며 무우정이야기판을 닦았다고 하였는데 그 정성이 보인다.
수고한 답례로 사진도 찍어왔다.
무우정은 군량리 마을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아래를 감돌아 흐르는 양화천 건너편의 마을과 넓은 들판을 조망할 수 있다.
마침 배도 고프고 뭔가를 먹기엔 이런 좋은 정자도 없다. 우리는 무우정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쑥인절미와 내가 좋아하는 크로와상, 사과 그리고 즉석에서 만든 냉커피~
집에서 출발할 때 보냉병에 얼음 만을 담아와서 다른 병에 담아 온 커피로 냉커피를 만들었다.
이런 한가로운 정자에서 마시는 냉커피는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기분까지 좋아졌다.
커피는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마셨고 그리고 남은 얼음은 나중에 정말 너무 요긴하게 먹었다.
오늘 걷는 길 이름이 자채방앗길이다.
'자채'가 뭔가 했더니만 재래종인 쌀 이름이란다. 조선 시대 왕실에 진상되던 쌀인 자채미(紫彩米)를 생산하고 도정을 하던 마을이 있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이런 품종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재배하지는 않는다. 경제성과 맛에서 현대 개량 품종에 비해 떨어지므로 더 좋은 품종으로 모두 바꾸었다고 한다.
출출하던 배도 채웠겠다. 무우정을 돌아 나와 양화천 둑방을 따라 직진이다.
그늘 한 점 없는 한낮의 햇볕은 아무리 바람이 선선해도 견디기 힘들다.
이런 길은 정말 질색팔색이다. 그러나 어쩌랴.... 양산으로 최대한 막으며 걷고 걷는다.
왼쪽은 양화천이고 오른쪽은 끝도 없는 들이다.
조선시대 이 너른들에서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자채미를 재배하였을 황금들녘.
양화천 둑방에서 플라타너스 그늘을 만났다.
그늘 구간은 짧지만 강렬한 플라타너스 그늘이다.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나듯 반가웠다.
양화천 楊花川 - 버드나무가 개천가에 많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버드나무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양화천 주변에 우리나라 토종쌀인 자채미가 아직도 소량 생산되는 곳이라 이 구간 이름이 '자채방앗길'이라고 한다.
참고로 토종과 재래종이라는 말의 뜻을 짚어본다.
'토종'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나거나 자라는 동물이나 식물 따위의 종자(種子). 희소성 때문에 특별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재래종'은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자라던 것과 외국에서 수입되었지만 우리나라에 토착화된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한다.
드디어 길고 긴 양화천 둑방길을 벗어나 설성면 장천마을로 들어섰다.
초입에 장천2리마을회관이 있다.
앞쪽으로 성호호수연꽃단지가 나타났다.
이제 이 길이 끝이 나는 것 같아 너무 반가웠다.
연꽃은 고사하고 연잎마저 볼품없어진 연꽃단지를 빠르게 지나쳤다.
성호호수연꽃단지에서 화장실도 이용하고 연꽃단지 정문으로 나가면 성호저수지, 성호교를 지나 이제 설성면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블친인 연꽃님이 이 길을 걷고 설성면행정복지센터앞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3시 버스를 타기 위해 1km를 9분 만에 주파하였다는데 우리는 시간이 30분 이상이 남아 널널하였다.
앗?
설성면행정복지센터를 보자마자 갑자기 드는 생각!!
성호호수연꽃단지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지 않고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남편에게 정류장에서 쉬고 있으라 하고는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뒤따라 오고 있었다.
그러나 뛰는 것도 옛날 말이지 이 나이에 뛰는 게 어디 내 맘대로 뛰어져야 말이지.
뛰다가 걷다가 정신없는 와중에 연꽃단지에 도착하여 스탬프를 찍었다.
이게 뭐라고!!
숨이 턱에 닿아 도착한 8길 자채방앗길 두 번째 스탬프함.
이때가 오후 2시 39분이다.
스탬프함이 있던 곳이 주차장이라 우리가 지나칠 때 주차된 차량으로 눈에 띄지 않아 지나쳤나 보다.
주의력 부족이다.
타야 할 버스 시간에 정신이 팔려 스탬프 따위는 잊은 거다.
스탬프를 찍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때는 이미 3시 버스는 포기하고 한 시간 후에나 온다는 다음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까 걸음은 최대한 빠르게 빠르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25-10번 버스는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한 발도 옮길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으나 배낭에서 점심때 남겨둔 얼음을 꺼내 마셨다.
얼음은 마시기 좋게 녹아 있었고 적당한 크기의 얼음과 함께 시원한 물을 마시니 몸 안의 열을 식혀 주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시원한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버스가 올 때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후였다.
오후 3시 10분에 이천역으로 가는 25-10번 버스를 탔고 한 시간여를 달려 이천역에 하차하였다.
집까지 무난하게 잘 왔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최종 걸음 수가 35,000보가 넘었다.
막판에 놓친 스탬프 찍기 위해 되돌아 가느라 난리가 났으나 거의 포기했던 버스를 제대로 탔으니 해피엔딩이다.
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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