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지리산 벽송사순례 (1) 본문
지리산 벽송사 2박3일 순례
2009년 8월 7일 ~9일
불여사 하계전국순례에 작년 이름 봄 공주 '마곡사'에서의 순례를 마지막으로 통 참여를 못하였다가 정말 오랜만에 지리산 벽송사에서
열리는 전국순례길에 나섰다. 불여사....'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넷 카페이다. 오랜만의 불여사 나들이인지라 좀은
망설였지만 벽송사를 향한 마음으로 법우들을 만나러 갔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어제 본듯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서 정말 잘왔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벽송사 '월암스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들려 주시는 나에게 누군가가 나쁜일을 행하면 전생에 내가 지은 빚갚음이리라
고맙습니다....생각하고 고마운 일을 만나면 적금 들듯이 차곡차곡 모아 두라시는 법문을 들으며 다시금 감동과 반성을 하게 되고......_()_
<회향을 하며 벽송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
碧松寺는 조선 중종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에서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경성일선,청허유정(서산),부휴선수,송운유정(사명),청매인오,환성지안,
호암체정,회암정혜,경암용윤,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겸수한 대 종장들을 109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만학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부용만개 혹은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의 형국에 자리 하고 있다.
대만으로 상륙한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오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벽송사는 짙은안개에 묻혀 무거운 분위기다.
<벽송선원>
선원에서 보이는 종무소...
'청운당' 역시 안개속이다. 각 지역에서 개별 출발인지라 일찍 도착한 몇몇의 법우들만.....안개속에 묻힌 벽송사는 그야말로 절간이다......
1704년(숙종 30년)에 환성지안 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 때에 불당, 법당, 선당, 강당, 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하였으며, 상주하는 스님이 300여명에 이르렀고, 부속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저녁예불을 올리고 108배를 했다. 한배 한배 할때마다 비오듯이 떨어지는 땀방울....
힘듬뒤의 개운함......템플동안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했더니만 다리가 어찌나 아픈지.....-.-;;;
목장승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 2호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일제시대 초기의 것이라고 전한다.
왼쪽의 '금호장군'은 커다란 왕방울 눈 하나만을 빼고는 원래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 버렸다.
그러나 '호법대신'인 오른쪽 장승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서 있다. 이 두 장승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나타난 걸작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목장승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예로부터 목장승에 기원하면 애정이 돈독해진다고.....
서울,대전, 대구,부산, 광주등지에서 제 각각의 편한 시간대에 출발을 하여 모인 법우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두런두런 반가운 인사말들이
오고갔다. 처음 온 법우들도 많았지만 오랜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 그간의 안부를 묻느라 밤이 깊어 갔다.
새벽 3시....새벽예불을 알리는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외는 소리에 눈을 뜬다.
어제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든 탓에 눈뜨기가 힘들다. 강압적인 예불이 아닌지라 편한대로 이불속을 파고든들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모두들 안개낀 도량을 걸어 원통전안에 정갈하게 앉아 있다. 하안거해제가 며칠전이었던 관계로
스님들이 모두 만행에 나가고 공부중인 스님이 예불을 하시는데 어딘지 익숙치않은 초보(?) 냄새가 난다면 이상한가....ㅎㅎ
새벽예불을 마치고 아침공양시간까지 두어시간 눈을 붙였다가 아침 포행에 나섰다. 역시나 안개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야전병원이었다는 벽송사는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 하게 되었다.
60년대이후 구한원응대사의 원력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옛날 선종의 최고 조정에 벽송선원을 낙성하여
을유년(2005년) 하안거에 개원하여 눈푸른 납자들이 수선정진할 수 있는 선찰종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사진 : 심월법우님>
삼층석탑,도인송,미인송으로 가는길........
<벽송사 삼층석탑> 보물 제 474호
이 탑의 위치는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 놓은 것인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됐다.
2중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부를 이룬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탑이지만 사찰이 세워진 때가
조선시대(1520년)이므로 그때 탑도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탑의 위치가 법당 앞이 아닌 뒤편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의 모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예로서 주목 되는 탑이다. 현재 탑의 상륜부에는 복발과 노반이 남아
있으며 탑의 높이는 3.5m이다.
<미인송>
<도인송>
선방뒤 탑전앞에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의 전설 또한 유명하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그리고 벽송사 선방에서 도인이 유래없이 많이 나와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도인송으로 착각하고 한가지 소원을 기원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인송이라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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