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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길따라서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충현박물관

다보등 2013. 5. 17. 13:16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충현박물관

 

 

 

 

 

광명시의 문화유적지 중 하나인 충현박물관을 찾아 보았다.

오리 이원익 선생(1547~1634)의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설립한 국내 유일의 종가박물관으로 보물 1435호 이원익 초상 및 인조임금이 하사한 옛 집터에 세운 관감당, 종택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일대는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선생이 거문고를 타던 탄금암과 수령 400년의 측백나무, 최근 복원된 풍욕대,삼상대와 같은 정자가 남아 있다. 푸른 나무와 다양한 꽃들, 새들의 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곳으로 조용히 산책을 하기 좋은 명소이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으로 광명시민은 할인이 된다. 제일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관감당과 종택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충현관이라는 현판을 단 전시관이 눈에 들어 온다. 우선 오른편의 전시관부터 들어 선다.

 

 

전시관에는 이원익 선생의 영정, 친필,교서,문집,사궤장연첩과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목가구,제기,집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충현박물관장 함금자씨는 13대 종부이다.

 

 

 

관감당 편액 (인조 9년, 1631년)/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90호

인조 임금이 이원익 선생에게 하사한 집인 관감당 편액으로 관감당은 조선시대 임금이 하사한 사택 중 현재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관감이란 '보고 느끼다'라는 뜻으로 인조가 '내가 집을 하사하는 이유는 신민들이 그대의 청백리 삶의 자세를 보고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영정중 오른편에 있는 영정이 이원익 호성공신도상으로 보물 제 1435호이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피난했던 공적이 인정되어 호성공신으로 녹훈되었을 때 그려진 영정이다.

 

왼편에 있는 영정은 '평양 생사당 구장 이원익 영정'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양 지방의 서리들이 이원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에 모셔졌던 영정이다. 이원익이 1595년(선조 28) 우의정에 임명되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오리영우 편액

1693년(숙종 19) 10월 이관징(1618~1695)이 쓴 편액이다. 건물은 이듬해 건립되었다. 인조가 이원익에게 하사한 관감당터에 사우를 세웠다는 내력이 있어 건물의 건립연대를 확인하는데 귀중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1631년(인조 9) 관감당을 하사하였으나 1637년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폐허로 남아 있다가 1694년에 이원익 서거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사우인 오리영우가 건립되고 아울러 관감당도 증건된 것으로 보인다.

 

 

 

5월 충현박물관엔 모란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란사이를 다니며 조영남님의 '모란동백'이라는 노래를 나직히 읍조리게 된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종택>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이 살던 가옥으로 현재의 건물은 20세기 초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의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 비가 새므로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다. 효종 9년(1658)에는 그 집터에 사당이 건립되어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는데 후에 서원이 훼철되었다.

 

 

 

 

 

 

 

 

 

 

 

 

 

 

 

 

 

 

 

400년된 측백나무로 이원익이 살았던 때부터 있었던 나무로 추정된다.

나무아래있는 바위는 탄금암으로 이원익선생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바위이다.

 

 

 

 

 

 

 

<오리영우>/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관감당 뒤편에 있는 오리영우이다. 영우란 영정을 모신 건물을 말한다. 선조 13년(1580) 이전의 이원익의 영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원익은 당시 백성들이 '오리 정승'이라 부를 정도로 소탈하고 청렴한 생활을 한 서민적인 정승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 평양성을 다시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선조,광해군, 인조 등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충공이다. 이 건물의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든 건물로 보인다. 또한 사당과 달리 영정을 모시는 감실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억령묘소

 

이원익선생의 형님 이원보 내외묘소

 

이원익선생의 부모인 함천군과 군부인 동래정씨 묘소

 

정작 이원익선생의 묘소는 이곳에서 십여분거리에 있다.

지난번 이원익기념관을 들렀다가 우연찮게 이원익묘역을 돌아볼 수 있는 찬스를 가졌었다.

 

 

아름다운 꽃과 우거진 송림사이를 걷다보니 "바람에 목묙한다"는 시적인 이름을 가진 정자를 만났다.

건물은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 묵은티가 없지만 이름은 딱 어울릴듯 싶었다.

이곳은 여름철 구름산너머 서해에서 불어 오는 해풍으로 매우 시원한 곳이다.

 

 

 

 

 

 

 

 

삼상대로 충현서원지 일대에 있었던 표석으로 오리 이원익선생과 관련 있는 유적으로 보인다. 삼상(三相)은 일반적으로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의 삼정승을 모두 일컬을 때 쓰는 용어이다.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원익 선생이 삼정승을 두루 거쳤으며 많은 치적이 있었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해 후손 및 문인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준비'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문비대는 서원의 교육적 기능과 부합하는 이름으로 서적 등을 보관하던 건물 명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표식은 충현서원지에 서식하는 잣나무 부근에 있던 것이며 돌의 재질 또한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이다.

 

 

<충현서원지>/경기도 기념물 제80호

강감찬,서견,이원익을 배향하던 서원으로 1676년(숙종 2)에 사액을 받았으며 옛 시흥지역의 유일한 서원이었다.

 

 

 

 

 

둥글래꽃

 

 

 

 

 

 

 

 

 

 충현박물관 :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5-16 (www.chunghyeon.org)

     관람시간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평일엔 예약후 관람 가능)

     관람방법:방문,전화예약 (☎ 02-89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