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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가 동쪽으로....달성군 도동서원 본문

바람길따라서

도(道)가 동쪽으로....달성군 도동서원

다보등 2009. 10. 6. 20:03

 

 도동서원(사적 제488호)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원래 1568년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세워져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려

1605(선조 38)년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먼저 지어 위패를 봉안하고 이듬해 1606년 강당 등 서원의 일곽을 완공하고 보로동서원이라 불렀다.

서원의 건립을 주도했던 인물은 김굉필의 외종손이며 영남 예학의 비조인 한강 정구(1543~1620)와 퇴계 이황(1501~1570)이었다.

1607(선조 40)년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자부심 넘치는 의미의 이름인 도동서원(道東書院)으로 사액되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보수한 바 있다.

도동서원은 186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의 하나로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로 평가된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에 둔 이 재는 생김생김이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로 불리는데 이 재를 넘어 도동리에 이른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아름다운 도동서원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이다.

 

전망대옆에는 한훤당 김굉필 한시 "노방송(路傍松)"을 새겨놓은 시비가 있다.

 한그루 늙은 소나무 길 가에 서 있다/ 괴로이도 오가는 길 손 맞고 보내네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지나가는 사람중에 몇이나 보았느냐

 

 

 

서원의 정문인 외삼문에 해당하는 2층 누각인 수월루는 네 번째 석축위에 나래를 펴고 있다.

수월루는 처음 이곳에 서원이 들어설 때는 없었던 건물로 1855년 창건되었다. “서원의 제도를 갖추려면 누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서원을 출입하기에 가파르고 답답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1988년 불타버려 터만 남았다가 1973년 복원되었다.

다른 건물의 담박함에 비하여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부재들이나 구조도 빈약하여 오히려 도동서원의 품격에 흠이 된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수월루가 없다면 도동서원은 적극적으로 자연을 서원 안으로 끌어들일 장치가 없어지는 셈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수월루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무시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사모지붕의 환주문과 더불어 서원에서 유일하게 맞배지붕이 아니다.

이를 제외한 석단위에 세워진 건물들은 모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맞배지붕은 가장 단순한 목조 건물의 지붕구조로 엄숙하고 견고한 형태이다.

따라서 엄격함과 신성함을 지녀야 할 서원 건축에 잘 어울리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도동서원처럼 모든 건물을 맞배지붕으로 통일시킨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굉필 나무 -1607년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이 사액된 것을 기념하여 심은 은행나무이나 성리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김굉필 나무"라 이름 지었다.(수령 400년)

 

 

 

수월루를 지나면 환주문을 만난다.

 

환주문이란?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이라고.....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당"은 보물 제350호이다. 물론 담장도 포함해서...

중정당은 강학 공간으로 높은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주심포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써 좌.우 앞퇴가 있는 한칸씩은

온돌방이고 가운데 3칸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이다. 강당의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그리고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의 갑석 바로 아랫단 면석

사이에는 여위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람쥐 모양의 길함을 나타내는 동물상과 서화가 좌,우 면석에 조각되어 있다.

 

 

용머리 4개중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한마리뿐이라고 한다.

 

서원을 출입할때도 아무렇게나 출입을 하는게 아니라 질서가 있다.

내려 갈때는 오른쪽 계단을 ....오른쪽 계단옆에 내려가는 다람쥐를 새겨 놓았다.

 

올라 갈때는 왼쪽계단을 ...왼쪽 계단옆에 올라가는 모습의 다람쥐....

 

 

생단은 제향 때 제수로 쓰일 희생 제물인 소나 양, 돼지 등을 검사하기 위하여 세운 시설로서,

이곳에서 제물의 적합 여부를 심사하였다. 현존하는 생단 가운데 규모는 크지 않으나 비교적 정교하게 가공된 예이다.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해 모각한 "도동서원"

강당의 기둥 윗부분에 흰 종이를 발라 놓은 것은 선생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종(宗)임을 도동서원 건축에서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다.

퇴계 선생등 후학들은 한훤당을 '동방도학지종'이라 하며 존경 하였다. 왕릉 정지각에 칠하는 백분칠처럼 기둥머리에 흰 창호지를

붙여 놓았으며 강당기단에도 왕릉 망주석에 새겨지는 다람쥐같은 형상을 한 세호를 새겨 놓았다. 도학지종이라는 한훤당 선생의

학통을 이어 받는 수위서원임을 내 세운 것이다. 이는 전국의 서원 중 도동서원만 유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당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위패와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제향공간이다.

정구선생은 서원 건립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유품정리 할 때의 공헌을 인정해서 1678년 추가 배양하였다.

향사는 음력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 지내고 있다.

 

 

 

 

도동사원의 담장

도동서원의 담장은 중정당, 사당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담장은 진흙을 섞어가며 막돌을 몇 줄 쌓아올린 다음 황토 한 겹, 암키와 한 줄을 되풀이 하다가 지붕을 덮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래위 두 줄로 듬성듬성 수막새를 박아 무늬를 내었다. 암키와와 수막새 그리고 진흙, 이는 음양의 조화를 고려해 축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수월루를 복원할 때 새로 쌓은 담장을 제외하고 모든 담장이 이런 모양이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한 견고한 축조기법이나 수막새의 장식무늬도 귀하지만, 담장이 지형에 따라 꺾이고 높낮이를 바뀌며

만들어내는 담장면의 변화와 담장지붕이 그리는 스카이라인 또 지붕선과 어우러진 모습은 상쾌하기 그지없는 우리 전통건축물의 멋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