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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여행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절집 '실상사'

다보등 2010. 5. 26. 17:39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절집 '실상사'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를 찾으면 너른 논 한가운데 여염집 같은 편안한 모습의 절집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퉁망울 같은 눈을 가진 익살스러운 석장승을 먼저 만난다.

 

"남원 실상사 석장생"    ----중요민속자료 제15호---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들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 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 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구산선문> 

신라 말 당나라 유학승들에 의해 전래된 선종은 신라말 고려초의 사회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불교의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들어 온 선종 사상을 초석으로 아홉개의 산문이 형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산선문이다, 구산선문은 골품제도의 중심인 귀족 중심의

화엄사상에서벗어나 신분의 차별을 부정하고 백성들은 누구나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으로부터

소외된 지방 호족 세력과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실상산문이 개설된 828년(신라 법흥왕 3)부터 마지막 수미산문이

만들어진 932년(고려 태조 15)까지는 실로 104년이란 긴 세월......현재 우리 불교의 종가를 이루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맥도

바로 이 구산선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단다.

 

구산선문은? 

실상산문(남원 지리산 실상사), 가지산문(장흥 가지산 보림사), 희양산문(문경 희양산 봉암사), 동리산문(곡성 동리산 태안사),

사굴산문(강릉 사굴산 굴산사지),봉림산문(창원 봉림산 봉림사지), 사자산문(영월 사자산 법흥사),

성주산문(보령 성주산 성주사지),수미산문(해주 수미산 광조사지)

 

 

 

 

 

 

 

 

실상사 석등 <보물 제 35호>

 

실상사 삼층석탑   <보물 제37호>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약사전>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보물 제41호

통일신라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 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는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 손도 근래에 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리뭉실한 머리 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갸름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띈 이 불상은 온유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 말 불상의 변천양상을 가늠케 한다.

 

 

 

약사전의 아름다운 꽃창살문....

오늘은 초파일인 관계로 활짝 문을 열어 고정 시켜 놓아 억지로 쬐금 닫고 찍는 바람에 한쪽 귀퉁이만.....ㅋ^^;;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의 옛 이름은 부도전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극락전의 좌우에는 실상사를 창건하신 홍천국사와 그 제자인 수철화상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보물 제33호>

통일신라 진성여왕 7년(893) 수철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행적과 뜻을 기려 세운 부도탑이다.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 34호> 통일신라 진성여왕 7년(893)

 

증각대사 응료탑비 <보물 제 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