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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권 옆에 끼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을 옥천 이지당 본문

바람길따라서

책한권 옆에 끼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을 옥천 이지당

다보등 2012. 7. 24. 11:21

책 한권 옆에 끼고 나른한 시간 보내기 딱 좋을 옥천 이지당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옥천시내를 살짝 벗어나 15번지방도를 달리다보면 불현듯  하천건너편으로 손에 잡힐듯 지척거리에 양팔을 벌린듯한 모양새를 지닌 소담한 집이 보인다. 며칠전 내린 비로 하천에 물이 불어나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다. 초록이 무성한 산기슭에 활짝 펼친 모습의 이지당의 모습이 개울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느낌을 준다.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너 이지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사뭇 바쁘다. 물기 머금은 나무데크를 걸어 숲길을 따라 50m정도 걸어가면 거짓말처럼 이지당이 나타난다. 들어서는 입구에 이층누각이 하늘 높이 치솟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얼른 누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밟고 아슬아슬 올라서니 액자같은 모양새를 한 풍경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뒷편으론 산이 감싸고 앞으로 개울이 흐르는 배산임수이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뜨겁다. 뻐국이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 한자락이 나를 환영한다.

 

 

 

 

 

 

 

 

 

 

 

 

 

 

 

이층누각에서 바라 본 모습...천장이 낮아 약간 구부린 자세로 엉거주춤 움직여야 한다....

 

 

 

 

 

 

 

 

이지당은 조선중기 성리학자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헌이 세운 서당으로 1977년 12월 옥천군 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각신동 마을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 하였으나 그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 선생의 시전(時傳)에 있는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 끝의 '止'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송시열은 조헌보다 60여년 늦게 조헌이 죽고 난 후에 태어나 두사람이 마주칠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퇴락한 것을 1901년 옥천읍 옥각리의 금씨, 이씨, 조씨, 안씨 등 네 문중에서 재건한 것이라 한다. 옥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문화재 여행지이기도 하다. 율곡의 제자이기도 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중봉 조헌선생이 낙향하여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으로 앞의 강과 뒤의 산이 어우러진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조헌은 호가 중봉, 본관은 白川이다. 명종 22년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전투에 참여하여 700의병과 함께 순절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열이다.

 

 

 

본채의 오른편에 있는 누각으로 넓직한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자기 딱 좋을듯 한 장소였다. 옛날 서당의 학생들이 낮잠자는 용도로 사용했을까? 아니면 시원하게 공부를 하는 장소였을까? 어떤이가 독서하며 지내기 딱 좋을듯하다 하였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에서 책을 벗 삼다보면 한여름 더위는 잊을 수 있을 성 싶었다.

 

 

 

이지당은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 옆면 1칸의 강당건물로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강당으로 쓰였음직한다)이고 양쪽 2칸은 거실이다. 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높은 단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다. 집의 양쪽에 붙어있는 누각은 오른쪽 누각보다 왼쪽의 누각은 높이가 높았으며 한개의 방이 딸려있으나 오른쪽의 누각은 약간 낮은듯하게 방이 없는 대청으로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