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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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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영화,서적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다보등 2020. 7. 8. 20:20

「저자 진유정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5년.

분명 대한민국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호찌민 시가 더 고향 같아져버렸다.

잠시 살았던 골목과 키 큰 나무들이 있는 거리와 다정한 사람들이 그리워 베트남으로 가고 또 간다.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달콤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게 전부인 여행을.」

 

베트남의 국수를 다룬 책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를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날 하루만에 책을 다 읽었다. 그러고도 기웃기웃 책장을 무작위로 넘겨 보았다. 지난 1월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내 입맛에 딱이었던 베트남 국수 맛을 기억하고 있는 지라 이 책을 읽으며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 책은 베트남 국수에 대해서 백과사전 수준이다. 베트남 국수가 그리워 꿩 대신 닭이라고 우리동네 베트남쌀국수집에서 볶음국수를 먹었다. 그저 그랬다. 코로나로 부터 자유로워져 언젠가 다시 하늘길이 열리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베트남으로 국수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럴려면 그냥 이 책을 하나 사야겠다. 국수가이드북으로 딱이므로 여행갈 때 들고 가야할 듯...^^*

 

 

낡아빠진 샌들을 끌고 와 길거리 허름한 국숫집에 앉아 있을지라도 국수를 먹는 베트남 사람들은 시크하다. 오토바이 엔진과 경적 소리가 울려대는 길가에서도 몇십 년쯤 도를 닦은 사람처럼 시끄러운 세상을 평화로이 바라보는 여유로운 눈빛과 절대 서두르지 않는 손길. 국수 앞에 앉은 시간을 즐기는 그들에게서 쫓기며 끼니를 떼우는 모습을 찿아볼 수 없다. 우아하게 국수 그릇을 비운 사람들의 손은 자연스럽게 이쑤시개로 향한다. 마치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쑤시개를 물고 다시 한 번 시끄러운 거리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미련 없이 일어나 오토바이 키를 흔들며 유유히 떠나간다. 세상 그 어느 도시의 사람들이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게 노천 국수를 즐길 수 있을까. p51

 

 

라디오에서 우연히 '마를레네 디트리히'라는 독일 배우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난 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지

      그래서 곧 그리로 가야 해

      지난날 행복은 모두 가방 속에 있다네

      파리 마들렌 거리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5월의 로마 시내도 무척이나 아름답지

      조용히 와인을 마시는 빈의 여름밤도 좋고 말이야

      하지만 그대들이 웃을 때 난 오늘도 베를린을 생각한다네

      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기 때문이지

 

나도 두고 온 것이 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여러 번 다녀왔는데도

또 돌아가고 싶어질 리가 없다.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다./p212-213

국수를 위한 평등의 의자. 중국산 싸구려 자전거를 끌고 왔어도, 잘 나가는 일제 오토바이를 타고 왔어도, 허름한 식당에 어울리지 않는 값비싼 벤츠를 몰고 왔어도, 아무리 유명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맛있는 국수를 먹으려면 이 작은 의자에 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