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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광릉의 원찰 봉선사... 본문

사찰여행

광릉의 원찰 봉선사...

다보등 2008. 4. 6. 15:07

<봉선사>

고려 광종 20년(969년) 법인 국사께서 창건하고 운악사라 하였으며 조선예종 1년(1469)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 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하였다.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과

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에 소실된 것을 서기 1637년에 계민선사가 복구하였으며 1950년 6.25사변으로 16동 150간의 건물이 전소되어

다시 복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하얀몸을 드러낸 이색적인 오솔길이 있다.물어보니 자작나무란다,

세월이 흐르면 멋진 자작나무 산책로가 될것이겠다.뜬금없이 빨간머리앤의 동화가 생각나는건 왜일까?....ㅎㅎ

 

봉선사입구의 부도탑들이 즐비한 가운데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보인다,

 

 

봉선사 입구에 서 있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황량한 모습 보다는 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너무 멋질것 같은 나무다. 

 

 

 

봉선사 대웅전 초창은 조선 예종 1년(1469)으로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서울 이북에서 가장 크다고 전해졌으며 재창은 1637년 계민선사에

의한 일괄 중수때이다.삼창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현 전각으로 스님 뜻에 따라 대웅전을 '큰법당'이라 한글로 이름하였다.

 

.....참 특이하다...그래서 좋다 친근해서....._()_

 

  

 

 

 

 

 

봄햇살에 익어 가고 있는 장독대의 항아리들이 따끈따근하다.

장 담근날을 적어 놓은 표찰들을 하나씩 목에 걸고서.....

 

 

 

 

 

봉선사 대종 (보물 397호)

이 종은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것 중 몇개 남지않은 조선전기의동종으로 예종 원년(1469) 왕실의 명령에 따라 주조된 종이다.

높이 238m, 입지름 168m로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의 고리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모습이다.

 

 

 

 

 

 

 

 

 

 

 

춘원 이광수기념비에는 1,371자로 된 글이 새겨져 있었으니....

 

그러나 내 자식들이나 가족 또는 친구들이 내 죽어 간 뒤에 구태여 묘를 만들어 주고 비를 세워 준다면 그야 지하에 가서까지 말릴 수야 없는 일이나

만일 그렇게 되어진다면 내 생각으로는 이광수는 조선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던 사람이다하는 글귀가 쓰여졌으면 하나 그도 마음 뿐이다 -1936년

 

먼길가는 손님네야 네 노래나 듣고 가소 다린들 안 아프리 잠깐 쉬어 가소 변변치도 못한 노래 그래도 듣고 가소 시원치도 못한 얘기 그래도 듣고 가소

길가에 외로이 앉어 부르는 노래를 저기 저 손님네야 한 가락만 듣고 가소 가도 또 길이요 새면 또 날이다 끝없는 길손 불러 끝없는 내 노랠세 -1936년

 

나는 사는 날까지 이 길가에 앉어 있으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하렵니다. 누구시나 행인은 들어오셔도 좋습니다.가고 싶으면 아모때에

가셔도 좋습니다 -1937년

 

벗님네 날 찾으심 무얼보고 찾으신고 값없는 이몸인 줄 아마도 모르시고 행여나 무엇인가 하여 찾으신가 합니다 -1940년

 

내 평생에 지은 이야기 스물 서른 어느분 읽으신고 어느분 들이신고 그 얼굴들 눈앞에 그려 놓으면 모두 반가 오셔라 살 닿은듯 하여라 -1949년

 

춘원 이광수 문학비는 '내 생전에 그분의 기념비라도 세웠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춘원의 부인 하영숙여사의 말을 듣고 봉선사 주지 운허스님(본명 이학수,

춘원의 팔촌 동생),주요한,그리고 삼중당 출판사에서 1975년 10월 11일 세웠다고 한다.-자료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