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김포 장릉-성공회성당-철종생가,외가 본문
있으라고 이슬비인가......가라고 가랑비인가......
김포, 강화권역으로 답사를 가는날 아침 조용조용 비가 오고 있다.
오전중에 개였다가 밤늦게 서해안부터 비가 제법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비가 와도 답사계획은 ing......
'09년 6월 9일 (화)오전 10시 불광역에서 일행들과 함께 김포로 gogo~~~
조선 16대 인조의 아버지 원종이 잠들어있는 장릉은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다. 김포는 평야로 이루어져 산이 매우 드문데,
특히 도심권 내에서는 장릉이 위치한 장릉산이 유일하다. 장릉을 비롯한 조선 왕릉의 주변은
산세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으며 강한 폐쇄성과 안정성, 중층성을 확보하고 있다.
장릉(章陵)은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과 그의 비인 인헌왕후의 구씨를 모신 능이다.
원종은 1619년(광해군 11) 12월 29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듬해 2월에 양주군 곡촌리에 장사지냈는데, 그로부터 3년 뒤 큰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들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대원군에 봉해졌으며,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 |
정자각 우측에는 능행때 왕이 절을 하는 배위가 조성되어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는 참도라는 박석돌길이 깔려 있다. 참도는 신도와 어도로 나뉘는데
왼쪽의 신도는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서 오른쪽의 어도보다 약간 높고 넓다.
절을 마친 왕은 홍살문을 통하여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능침의 봉분이 정자각 어칸을 통해 바라보이는 장릉은 비교적 평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정자각 왼쪽 뒤로는 축문을 태워 묻는 <예감>이 있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두 봉분 앞에 혼유석이 각각 놓여 있는 쌍릉이다.
봉분은 지면과 맞닿은 부분에 아무런 조각이나 무늬도 새기지 않은 호석을 두르고 있다.
이는 추존 전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장릉의 남쪽에는 연을 가득 심어 놓은 연못이 있다.왕릉에 연지가 조성된 곳은 이곳 장릉과 동구릉,홍유릉 등이 있다.
Tip : 장릉이란 이름을 가진 장릉은 전국에 세곳이 있다.
파주 장릉(長陵) : 조선 16대 인조와 원비 인열왕후 한씨의 합장릉이다.(현재 비공개)
영월 장릉(莊陵) : 조선 6대 단종의 능이다.
김포 장릉(章陵) : 조선 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를 모신 능
김포장릉을 답사하고 강화도로 이동을 하여 먼저 성공회성당을 찾았다.
배모양을 한 성당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사적 제424호)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사찰에 있는 종모양을 하고 있지만 비천상이나 그런것 대신에 십자가문양을 새겼다.
마침 성당문을 열어주어서 내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늘 우리들 안내를 맡은 칠암나무님은 몇번이나 방문을 했지만 한번도 내부를 보지못했다고.....^^*
강화도령 철종의 생가 <용흥궁>
조선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였던 잠저로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3)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좁은 골목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고 있어 창덕궁 낙선재와 같이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궁 안에는 철종 잠저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다. 지금 남아 있은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용흥궁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인해 어수선하기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ㅜ.ㅜ
철종은 본명이 이원범으로 1831년(순조 31) 전계군과 그의 부인 염씨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사도세자와 궁녀소생인 은언군이다. 정조대왕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제주에 유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아버지 전계대원군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원범이 11살이 되는 해에 죽었다.
원범이 18살이던 1849년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는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의 척족인 풍양 조씨 일파가 왕위 계승을 할까
염려하여 재빨리 손을 써 헌종의 7촌뻘인 강화도령 원범을 지목하여 돌연 왕위를 맡긴다.학문과는 거리가 먼 어린 나무꾼 원범의 나이
19세로 급히 봉영의식과 관례를 행한 뒤 1850년 6월 9일 인정문에서 즉위하게 되니 그가 바로 조선조 25대(1850~1863) 철종이다.
뒤꼍에 있는 철종의 <잠저구기비각>
<철종 외가>
역시 철종 4년에 지어진 집으로 철종의 외삼촌인 염보길이 살았던 집이다. 당초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에 두는 (H)자형 가옥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평면 구성은 전체적으로 경기지역 사대부 가옥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안채와 사랑채를 (ㅡ)자로 곧장 연결시켜 화장담(주로 사대부집에서 사용 되었던 일종의 담장)으로
간단하게 나눈 것이 특이하다.
사랑채
사랑채와 길게 붙은 안채
화장담을 통해 뒤안으로 나간다.
<화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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