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일년에 한번 산문을 여는 봉암사의 초파일 새벽 본문

사찰여행

일년에 한번 산문을 여는 봉암사의 초파일 새벽

다보등 2011. 5. 13. 12:15

일년에 한번 산문을 여는 봉암사의 초파일 새벽

 

 

 

 

새벽 어둠을 뚫고 봉암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어둠속에 우산을 받쳐든 도반들이 조용히 숨죽이며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우선은 봉암사를 지나쳐 백운대 마애보살좌상을 먼저 만나 보기

위해서이다. 비내리는 새벽 숲길은 어둠에 묻혀 발걸음이 허공에서 자꾸 헛발질을 한다. 이상하게 모든 도반들도 긴장을 했는지 거친 숨소리와

계곡에 사납흐르는 물소리만이 새벽을 가르고 있다.

 

 

어둠속에 숨죽인 봉암사 경내....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본거지로 지금부터 약1100여년전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지증국사 도헌이  창건하였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69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137호인 지증대사 적조탑(寂照塔) · 국보 제

315호인 지증대사 적조탑비 ·보물 제171호인 정진대사 원오탑 ·보물 제172호인 정진대사 원오탑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문득 운동장만큼이나 너른 바위가 나타났고 그곳에 마애보살좌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깜짝이야! 마애불을 만난 나의 첫 느낌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문경 봉암사 백운대 계곡에 앉아 계시는 마애 미륵보살좌상이다.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21호이다.

 

 

조선시대 고승인 환적스님(1603~1690)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환적 의천스님의 원불이라고 전해지며 이 보살상은 봉암사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백운대라고 불리는 경관 좋은 곳 개울가에 동북을 향한 높이 4m, 폭 4.4m의 큰바위면에 조각되어 있다. 연대는 고려말기로 추정된다.

 

 

 

신체에는 속옷에 매어진 띠매듭이 매우 뚜렷하고 옷주름은 자연스럽게 밑으로 흘러내렸다. 왼손은 배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고,손밑에 드러난 발은 두 손과 더불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오른발이 위로 올라가게 결가부좌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체는 높게

처리하면서도 무릎사이를 넓게 하여 안정감을 보여 주고 있으며 대좌는 연화좌이나 마멸이 심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문화재지정은

보살로 되어 있으나 머리부분과 상호의 백호 등으로 볼 때 여래상으로 추정이 된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

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백운대 마애보살좌상을 참배하고 봉암사로 내려오는 내내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이다. 그래그런지 절마당엔 연등하나 없다. 하얀등을 달아

놓은 봉암사 경내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 조차 볼 수가 없어 그칠줄 모르고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_()_

 

 

대웅전은 1992년에 새로 지었다.

정면 7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치미에 용머리(龍頭)가 장식되어 있으며, 전각 앞 4마리의 사자상(獅子像)이 수호를 하고 있다. 창호에는 화려

하게 수 놓아진 꽃문살로 장식되어 있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처리 하였다. 안에는 근세 제작된 후불목각탱(後佛木刻幀)을 봉안한 것이 특징

이다. 매우 화려하다.

 

 

 

<봉암사 3층석탑>보물 제 169호

 

석가탑과 비슷한 비율을 가진 아름다운 탑이다.

탑은 건물의 댓돌에 해당하는 기단부(基壇部), 탑의 중심이 되는 탑신부(塔身部),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석탑은

기단이 2단이나, 현재 땅 위로 드러나 있는 이 탑의 기단은 1단이다. 특이한 것은 지면과 맞닿아 있어야 할 탑의 받침돌 밑면에 또 하나의 받침이 있어

혹시 이것이 아래층 기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넓어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머리장식 모두가 완전히 남아 있어서 한국 석

탑의 기준이 되는 귀중한 유례라는 점이다. 탑의 머리장식은 인도의 탑에서 유래했으며 인도탑의 소형화가 우리나라 탑의 머리에 적용되었다. 탑의 가

장 윗부분에 놓이며 여러 개의 구성요소가 차례로 올려져 가장 장식적으로 마련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9세기 통일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기단 구조가 특이하고, 탑신의 각 층 비례와 균형이 적절하여 아름답다.

 

 

 

 

<금색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다포계(多包系) 양식이며, 둥근 서까래가 네모난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겹처마이다. 용마루 끝의 치미는 용머리(龍頭)로 장식한

팔작지붕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비로자나불이 봉안. 예전에는 대웅전으로 사용되었고 후면에 ‘대웅전’현판이 걸려있다.

 

 

 

금색전 뒤편에 보면 대웅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대웅전"의 옆 모습...

 

 

지증대사 적조탑과 지증대사 적조탑비가 새로이 지은 전각안에서 비를 피해 잘 모셔져 있다.

 

 

 

지증대사적조탑비는 보물 제138호에서 2010년 1월 국보로 승격이 되었다. 이 비의 비문은 신라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이다.

봉암사에 있는 지증국사 비문에 따르면 도헌은 경주사람 김찬양의 아들로 어려서 부터 불도에 뜻을 두고 부석사에서 출가 하였다. 심층이란

사람이 희양산에 있는 땅을 내면서 선원을 세우기를 간청하니 와 보고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하면서 봉암사를 세웠다.이렇게 하여 신라하대의 새로운 사상인 선종의 구선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개창되었

것이라 한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국보 제315호

 

 

<봉암사 지증대사탑>보물 제 137호

 

 

 

극락전은 879년(헌강광 5년) 지증대사가 창건한 건물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극락전과 일주문만 남기고 그 많던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극락전은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4호 지정되었다. 봉암사 극락전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시 원당으로 사용한 유서 깊은 건물로 전하고, 현재

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御筆閣)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옥개보수가 있은 듯 망와에 소화16년(1941년)이란 기록이 남아

있다.


<극락전>/보물 제1574호

 

 

 

 

 

오전 6시 아침공양을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일년에 한번 문을 연다는 봉암사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빗속에 찾았다.

긴 침묵을 깨고 단 하루 산문을 열어 중생들을 맞아 준 봉암사...

그 오랜 기다림속에 찾아 간 봉암사를 정해진 짧은 시간안에 두서없이 허둥지둥 돌았던것 같아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리다...

 

 

 

 

 

 

희양산의 높이는 999m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문경새재에서 속리산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있다. 산세가 험해 한말에는 의병의 본거지기도 했다.

산 정상 일대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난코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겨울에 등산하기엔 위험한 반면 전문 클라이머들은 즐겨 찾는다.봉암사가 있는

탓으로 등산금지가 되어 있어 희양산 산행은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봉암사를 빠져나와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는 제법 멀다. 새벽보다는 그나마 비가 잦아 들고 있어 다행이다. 초파일인 오늘 일년에 한번 산문을

여는 절집 봉암사를 뒤로 하고 그렇게 또 어렵게 산문을 여는 또 다른 영천 백흥암을 향해 부지런한 걸음을 옮겨야 한다.안개에 쌓인 희양산을 뒤로

하고 가는 길목에 흠뻑 비를 맞은 당산나무와 그 옆의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낡은 당집이 있어 눈길을 끈다.노거수는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