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기형도의 시 '안개' 본문

일상스케치

기형도의 시 '안개'

다보등 2017. 4. 9. 07:37

기형도의 시 '안개'

 

 

 

 

 

 

 

 

 

 

 

 

 

 

 

 

 

 

 

아침 창밖 풍경...커튼을 쳐 놓은것 마냥 희뿌연 창밖 풍경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이 안개조차 께름칙하다. 문득 이 동네(소하동)에서 살다 요절할 시인 기형도의 안개가 생각났다.

 

미세먼지...공기청정기가 인기리에 팔린다는데...창문 열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미세먼지가 넘넘넘 못마땅하다.

먼지...먼지...내가 알던 먼지는 흙먼지...차라리 그 흙먼지가 그리운 요즘이다

 

 

 

안개/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을 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 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89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타계한 시인...

1960년 인천시 웅진군에서 태어나 5세부터 29세 요절할 때까지 광명시 소하동에서 거주했던 기형도 시인의 문학성을 알리기 위해 광명시에선 기형도문학관을 공사중이다. 문학관은 올 6월쯤 완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