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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박혁거세의 설화가 서린 경주 오릉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경상도

신라 박혁거세의 설화가 서린 경주 오릉

다보등 2021. 4. 7. 15:49

오전에 선덕여왕길을 절반쯤 걷고 비를 핑게삼아 중도하차하고 벚꽃길을 달려 경주 오릉으로 왔다. 오래됨으로 전하는 경주이야기가 도처에 서린 지붕없는 박물관 경주. 참으로 몇년만에 경주에 왔구만 날씨가 이래서 참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나 빗속을 걷는 느낌도 참 좋았다. 비는 소리없이 사뿐히 내리고 있고 용트림하듯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 같은 소나무들은 정녕 왕릉을 호위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소나무들에 한없는 눈길을 주며 오릉 주변을 걷다보니 아쉽게도 금방 한바퀴를 돌았다. 몇바퀴를 돌아도 지루하지 않을 편안한 왕릉이다. 웅장함 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이곳은 비속에 걸어도 부족함 없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경주 오릉(사적 제172호)은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시조인 박혁거세왕과 그의 왕후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네 분의 왕을 담엄사 북쪽 사릉원 내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이 오릉에 대해 <삼국유사>에는 "제 1대 박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에 승천하였다가 7일만에 유체가 5체로 나누어져 땅에 떨어졌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모아서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5체를 각각 장사지내서 오릉이 되었고 이로 인해 사릉(蛇陵)이라 하였으니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알영정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태어난 우물이다. 옛 문헌에는 알영정이 경주부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데려다 길렀으며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알영은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추었는데 시조왕께서 소문을 듣고 왕비로 맞아 들였다.

 

숭덕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4호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이다. 조선 세종 11년(1429)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다.

선조 34년(1601)과 광해군 10년(1618)에 다시 지었고 숙종 30년(1704)에 고쳐지었다. 경종3년(1723) 숭덕전이라 편액을 걸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영조 11년(1735)에 고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