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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본문
644년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조정의 반대를 무릎쓰고 고구려 침공을 결심하고 이듬해인 645년 요하를 건너 고구려 침공을 개시하였다. 안시성 전투는 당시 국경에 위치하였던 안시성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말한다.
고구려는 이에 맞서 고구려와 말갈 연합군 15만 명으로 안시성을 구원하게 하였으나 이 구원군은 唐에 패하고 만다.
당 태종은 그 여세를 몰아 20만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고구려는 안시성 구원군이 패배한데다가 남으로는 신라의 공격을 받고 있어 안시성의 지원능력을 잃어버렸다. 고립무원에 처한 안시성의 위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당 군은 안시성을 향해 항복을 권유하며 한편으로는 당시 가장 위협적인 성 공격 무기였던 포거(抛車: 큰 돌을 날려 보내는 투석기), 충거(衝車: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를 동원하여 안시성을 공격해 왔다. 안시성은 5만의 병사로 20만의 당 군을 감당하여야 했다. 그러나 안시성의 양만춘이 이끄는 고구려 측은 이를 번번이 물리쳤으며 무너진 성벽도 재빨리 수리하는 방어에 임하였다.
이에 唐 군은 60일에 걸쳐 성의 동남쪽에 성벽보다 높게 토산(土山)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갑자기 토산이 무너졌고(안시성의 고구려군이 토산 아래에 땅굴을 파서 토산을 무너뜨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영화에서도 이를 참고하여 토산을 무너뜨린다) 고구려군은 이 틈을 이용하여 토산을 점령하였다. 唐 군은 토산을 탈환하기 위해 3일간 극렬한 공격을 폈으나 실패하였다. 이 계획이 실패하여 큰 타격을 받은 唐은 날씨도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졌으므로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그 해 9월 18일 서둘러 퇴각을 하였다. 이때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이다.
이 같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자의 이름이 <삼국사기> 등의 안시성전투에 관한 기본사료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래의 야사에는 양만춘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 싸움에서 당 태종은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고려 후기의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당 태종은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화살에 맞은 눈의 후유증이었는지 어쨌는지 안시성 전투 4년 후인 649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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