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긴긴밤 / 루리 글 . 그림 본문
긴긴밤 이야기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펭귄 이야기다.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예요." "나도 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게 기적인 줄 그땐 몰랐었다. p94
늙은 흰바위코뿔소와 어린 펭귄이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했으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어린이 도서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은 어른이 책이다.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는 작가의 그림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순식간에 읽어 버리곤 다시 천천히 한번 더 읽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많이 아프고 슬픈 책이다.
분명 누군가는 잠못 이루는 밤이었고, 또 누군가 한테는 잊을 수 없는 긴긴밤이었을 거다.
긴긴밤은 어린 코뿔소 노든이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코끼리 고아원이다.
코뿔소 노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나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랐다.
노든은 온갖 모든 일을 긴코로 하는 코끼리 코나 펄럭이는 커다란 귀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노든의 코와 귀는 자라지 않았다. 대신 뿔이 있을 뿐이었다. 노든은 어렴풋이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 코끼리가 말했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p12)
코뿔소로 태어난 그는 코끼리로 살아갔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고아원에 남든 나가든 선택을 해야 한다. 결국 노든에게도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걱정 없이 코끼리로 살 것인가, 자기 안에 있는 물음을 좇아 바깥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고민으로 잠못 이룰 때 코끼리들이 노든에게 말했다.
'이미 훌륭한 코끼리이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다'
노든은 바깥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노든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던 어느 "완벽한 저녁", 코뿔소의 코를 노린 사냥꾼들에게 아내와 딸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겨우 목숨만 건진 노든이 분노와 불면에 시달리며 복수를 준비할 때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앙가부는 노든에게 새로운 꿈을 준다. 그런 앙가부마져 사냥꾼들에게 잃은 노든 앞에 펭귄 알이 들어 있는 양동이를 입에 문 펭귄 치쿠가 나타난다. 치쿠가 말하길 펭귄은 바다속에서는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단다. 둘은 함께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좌초한 불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불행도 있다. 코끼리 고아원 밖으로 나간 것은 노든의 선택이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사냥꾼들과 벼락처럼 떨어진 전쟁은 노든의 선택이 아니었다. '완벽한 저녁'이 깨진 이후 노든은 복수심으로 스스로를 불태우지만, 앙가부와 치쿠의 알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사는 것보다 죽기가 더 쉬운 세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아 하는 이유를.
치쿠가 그랬던 것처럼 펭귄들은 다 수영을 할 줄 안대, 그래서 바닷속에서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노든과 어린 펭귄은 바다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바다를 찾으러 나선 길 위로 여러 밤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 같은 호수를 발견하고 어린 펭귄은 두려울 것 없이 호수 가운데로 나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엄쳤다. 그 밤에 노든과 어린 펭귄은 망고 열매 색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호숫가 모래밭에 누웠다. 하늘이 예쁜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저거는 무슨 색이라고 불러요?"
"저렇게 예쁜 하늘 색깔에 이름이 있을 리가 있겠어?"
"음, 저건 잘 익은 망고 열매 색 같아요. 기억나요? 우리가 그때 먹었던 망고 열매요."
"기억나고말고, 운이 좋았지. 그렇게 잘 익은 망고 열매를 발견하다니. 듣고 보니 정말 잘 익은 망고 열매 색이구나."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과 만족감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펭귄이 나를 좋아해 줄까요?"
"물론이지."
"노든, 나는 누구예요?"
"너는 너지." / p98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으로 일렁이는 여기는 내 바다야."
"그러면 나도 여기 있을게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중략)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내 부리를 봐요. 꼭 코뿔같이 생겼잖아요. 그리고 나는 코뿔소가 키웠으니까, 펭귄이 되는 것 보다는 코뿔소가 되는 게 더 쉬워요."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나를 혼자 보내지 말아요."
"이리와, 안아 줄게.......오늘 밤은 길거든." p115
마지막 순간까지 치쿠가 알을 품었던 그 마지막 순간에 노든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노든이 정성을 들인 알에서 펭귄이 태어났다. 이름도 없는 작은 펭귄은 당돌하고 씩씩하다. 노든이 코뿔소가 되기 위해 코끼리 고아원을 나온 것처럼, 어린 펭귄은 '이미 훌륭한 코뿔소이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다'는 노든의 격려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나선다.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거대한 바다를 향해 홀로 떠난다.
나는 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절벽 꼭대기에 올라 설 수 있었다.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124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p 125
♣ 작가 루리는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긴긴밤>으로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그림책 부문)을 받았다.
♣ 북부흰코뿔소가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다.(위키백과)
코뿔소의 코는 우리들 손발톱 같은 것이다. 코뿔소의 뿔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암시장에서 아주아주 비싼 가격으로 코뿔소 뿔을 거래하고 있다. 코뿔소는 끊임없이 밀렵을 당하고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 2018년 3월, 45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수단의 딸 '나진'과 나진의 딸이자 수단의 손녀인 '파투'
이렇게 암컷 2마리가 생존해 있다.
2021년 10월, 단 두 마리의 암컷 중 하나인 나진이 복원 프로젝트에서 은퇴하였다.
이로써 생식이 가능한 개체는 단 한마리이다.
북부흰코뿔소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현재 인공 번식 밖에 남아있지 않다.
북부흰코뿔소 수컷 정자를 보관하고 있으며 이를 암컷에 인공수정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만약 남은 암컷이 죽을 때까지 인공 수정으로 출산하지 못하면 북부흰코뿔소는 야생에서 절멸한다.
중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북부흰코뿔소와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남부흰코뿔소.
두 종류의 아종이 있으나 이 중 북부흰코뿔소는 현시점에서 자연 번식할 수 있을 정도의 개체수가 남지 않은 상황이다.
북부흰코뿔소가 사실상 멸종한 만큼 '흰코뿔소'라는 이름은 대부분 남부흰코뿔소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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