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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무와 관련된 음식 솜씨 없는 며느리 이야기 본문

일상스케치

무와 관련된 음식 솜씨 없는 며느리 이야기

다보등 2025. 1. 8. 08:30

'음식 솜씨 없는 며느리 이야기'는 어디서 읽은 글인데 오래되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너무 재밌다 생각하여 메모해 놓았던 글이다.

2016년 중국 샤먼에서

 

음식 솜씨가 나처럼 별로인 며느리가 있었다.

사는 것도 궁핍했던지 시아버지 밥상도 늘 무로 만든 깍두기 한 가지뿐이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친구집에 마실을 갔다.

끼니때가 되자 친구 며느리가 밥상을 내오는데 반찬이 상에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무로 만든 반찬이 여러 가지 올라와 있었다.

뭇국, 무김치, 무나물, 무말랭이 무침 등 열 가지나 되는 반찬이 모두 맛도 좋았더란다.

집에 돌아온 시아버지가 며느리 보고 그 이야기를 했다.

"아가, 내 친구네 며느리는 무로만 반찬을 열 가지나 만들었더구나."

"아버님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심 기대를 했다.

다음날 아침 며느리가 밥상을 무겁게 들고 왔다.

그리고 밥상을 받아 든 시아버지 깜짝 놀랐더란다.

밥상에는 무 깍두기를 담은 그릇이 열 개나 있었다고.

혹시 내 이야기 아님?

 

2019년 칭다오靑島

 

내친김에 무에 관한 글을 하나 더 올려 본다. (지식 +1)

천연 해독제 겨울 무

과거 우리 선조들은 채소를 소금이나 장에 절여 먹곤 했다. 이 채소 절임은 생존을 위한 염분섭취 용도로도, 또 채소가 나지 않던 겨울철 저장 음식으로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채소로 장아찌나 절임을 만들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채소가 '무'였다. 단단한 무는 오래 보관해도 식감이 무르지 않아 겨울 내내 두고두고 먹기 편했다.

무로 만든 절임은 훗날 고춧가루가 우리 땅에 유입되고 나서 깍두기로 진화했다. 깍두기의 원래 이름 중 하나가 '각독기(刻毒氣)'인데, 풀이하면 무가 독을 없앤다는 뜻이다. 무가 이처럼 건강에도 이롭고 구하기 쉬웠던 음식인지라, 깍두기는 서민들의 소박한 밥상 위에 단골 반찬이 됐다. 이후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삶은 무로 만드는 숙깍두기까지 만들어졌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동치미는 침채류(沈菜類)에 혁신을 일으킨 김치였다. 이전에 소금에 절여 만들던 장아찌류는 염장 과정에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당분과 비타민까지 함께 손실됐다. 반면 동치미는 국물에 무의 영양분이 용출되지만,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으니 훨씬 더 영양가가 높아졌다.

 

무로 만든 김치 중 나박김치가 있다. 무를 잇달아 썬 것을 '나박'이라고 불렀으며, 무의 옛말인 '나복'이 들어간 김치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 동치미와 나박김치는 음식을 넘어 치료제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 평안도 용천 지역에 역병이 돌았던 때다. 이때 '간이벽온방'이라는 의학서가 편찬됐는데, 여기에는 '중종이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순무로 만든 나박김치 국물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사발씩 마시도록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민간요법이었겠으나 의식동원(醫食同源) 관점에서 보면 무가 허한 기를 보충하는 데 좋다고 하니, 실제로도 환자의 기력을 보충해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도 연탄가스에 질식하는 사고가 나면 동치미 국물을 퍼먹이던 민간요법이 성행하지 않았던가.

 

"늦가을 시장에 무가 나올 때면 의원들이 문을 닫는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무를 '가장 몸에 이로운 채소'라고 지칭했다. 특히 무에 함유된 '다이제스트' 효소는 천연 소화제라고도 불린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의 김칫국은 빨간 나박김치일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조상들은 이미 떡을 먹고 체할 경우를 대비해 무김치를 함께 먹었던 것이다. 또한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무는 제철을 맞아 비타민C 함유량이 증가한다. 겨울이 오면 맛봐야 하는 제철 음식 중에 무를 빼놓으면 안 되는 이유다. (출처 : 한국일보 이주현 푸드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