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 해동 용궁사 본문

사찰여행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 해동 용궁사

다보등 2025. 3. 29. 06:52

옛날부터 숱한 신비한 변화를 간직하고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바다! 잔잔함의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동반한 성냄도 있다.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숙이 있는 것과는 달리 해동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무한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海岸孤節處)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현 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용궁사로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의 한 곳이며, 민족의 영산인 백두대간이 남랑을 타고 태백을 줄달음해 태평양을 건너기 전 동해의 최남단에 우뚝 솟아 멈춰 서니 이곳이 곧 해동제일 대명지(海東第一 大明地)라, 해동용궁사는 본래 고려우왕 2년(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나옹스님이 법을 구하기 위해 전국토를 헤맬 때 현 해동용궁사 자리에 당도하여 지세를 살펴보니 배산임수背山臨水 조성모복지朝誠暮福地 즉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 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하시고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행정진을 했다고 전한다. 기장 현지를 살펴보면 고려 때는 봉래산임을 알 수 있다.

 

달마대사

 

임진왜란 때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 운강스님이 보문사로 중창했고, 그 후 여러 스님이 거쳐 오셨으며 1970년 초 정암화상晸庵和尙이 주석하면서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서원하고 기도정진한 즉 회향일 몽중에 백의관세음보살님이 용을 타고 승천하신 것을 친견하시고 산 이름을 보타산(普陀山),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개칭하게 되었다.

/해동 용궁사 홈페이지

 

교통안전기원탑

 

용궁사측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창건 역사와는 상반된 의견도 있다. 실제로는 1970년대 초에 신축된 신생 사찰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1999년에 부산일보의 취재에서 기장군 기장문화원장의 고증 및 지역 주민의 증언으로 창건 역사가 왜곡임이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원래 절이 있던 곳은 깨를 심거나 소를 먹이던 빈터였다고 한다.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惠勤, 1320∼1376)을 창건주로 보는 것은 절측의 주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 해동용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지리산 화엄사 말사이다. 부산 지역에는 유서깊은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와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가 있지만, 특이하게도 해동용궁사는 전남 구례군에 있는 화엄사의 말사이다. 2021년 10월 21일자로 화엄사 말사로 등록되었다. 영남지역에 화엄사 말사가 등록된 사례는 해동용궁사가 처음이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된 계기는 전임 주지 정암스님이 화엄사를 통해 출가한 것이 인연이 됐다. 정암 스님은 1970년대 초부터 40여 년간 주지를 맡아 해동용궁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바뀌었고 전통사찰로 인정받았다는 것부터가 좋아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창건 역사가 어떻든 절을 방문하는 신도들이나 관광객들이 포근함을 느끼고 신심을 키울 수 있다면 사찰로서는 충분히 그 기능을 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200년 된 향나무 두 그루 사이에 모신 쌍향수불(약사여래좌상)

 

용문석교를 건너면 마침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동용궁사의 전경이 펼쳐진다.

 

 

16 나한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비는데 동전이 정확하게 들어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황금포대화상

 

아주아주 오래전 내가 알던 기장 용궁사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용궁사를 꼭 와보고 싶었다는 친구는 소원 풀었다며 아주 만족해했다. 그래 그러면 됐지. 

돌아 나올 때는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특히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참으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