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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종묘,창경궁(1) 본문
2009년2월25일오후 3시
<역사탐방 > 종묘와 창경궁
첫번째 :종묘(宗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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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지당> 사각형의 연못과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든 전형적인 원도방지(圓島方池)형 연못이다. 원도방지형 연못은 우리나라 고유의 연못 형태로 사각형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해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종묘라는 제례공간의 특성에 따라 연못에 연꽃등을 심지 않았으며 물고기를 키우지도 않았다고 한다.
<공민왕신당>공민왕 신당은 고려 공민왕의 제를 올리는 곳이다.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벽면에는 준마도가 있다. 공민왕은 고려 말기의 왕으로 조선의 건국 세력인 이성계와 신흥사대부들을 등용했던 왕이다. 이런 까닭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신흥사대부들이 종묘를 세우면서 공민왕의 은혜를 기리는 뜻으로 공민왕 사당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어숙실>어숙실은 제례를 앞둔 왕과 세자가 목욕제계 하고 의복을 정제하는 등 제사 준비를 하던 곳으로 재궁이라 부르기도 한다.왕은 제례 하루전에 이 어수길로 와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례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봄방학이라 엄마와 아이들이 많이 참석을 하였는데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아주 진지했고 재미있어 했다. 은근히 추운 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판위대>어숙실에서 제례준비를 마친 왕과 세자는 어숙실 서문을 나서 어로를 따라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임금과 세자는 동문앞에 판위대에서 잠시 예를 갖추고 정전으로 들어 간다. 임금은 전하판위 위에 서고 세자는 세자판위 위에 서서 예를 갖추게 된다.
<정전>국보 제 227호 정전은 서쪽은 높은 곳으로 두어 서쪽 첫번째 신실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차례로 3대 태종, 4대 세종, 7대 세조, 9대 성종, 11대 중종, 14대 선조,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19대 숙종, 21대 영조, 22대 정조,23대 순조, 문조,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27대 순종의 순으로 모셔져 있다. (*문조 : 추존왕으로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였던 효명세자로 헌종이 익종으로 추존했다가 고종이 문조로 묘호를 바꾸었다)
<공신당>정전 월대 아래 동쪽에 있는 공신당은 역대 왕조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임금이 승하하면 그 임금 때 큰 공을 세우고 죽은 신하들의 위패를 이 공신당에 모셨는데 이들을 배향공신이라 한다. 배향공신에 선정되는 것은 왕과 함께 모셔지게 되는 영광으로 사대부 최고의 영예로 여겨졌다.
넓은 월대위에 세워진 건물로 신주를 모신 열아홉칸의 신실(감실이라고도 함)이 있고 양쪽 끝에는 협실과 협실앞으로 월랑이 나와 있다. 호기심에 세어보니 진짜 열아홉칸이 었다.ㅋㅋ
<영녕전>보물 제 821호 세종원년에 2대 임금인 정종이 승하하자 정종의 신위를 모시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 정종은 당시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묘호도 받지못하고 공정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정종을 모시는 문제가 되자 세종은 별묘인 영녕전을 건립해 태조의 4대조 신위와 정종의 신위를 영녕전에 모셨다. 그후 영녕전에는 추존왕의 신위 그리고 단명하거나 대가 끊기는 등 위상이 적은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졌다. 세종때 처음 건립될 당시에는 모두 6칸의 건물이었으나 점차 증축해 16칸이 되었다.
왜 종묘를 세우는가? 종묘의 건립은 유교의 조상 숭배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혼을 모시는 사당과 백을 묻어 모시는 무덤을 각각 만들어 조상을 숭배하였다.특히 죽은 조상의 혼이 깃든 신주(神主)를 만들어 제례를 올리며 후손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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