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5월 운현궁을 거닐다.... 본문
운현궁을 거닐다....
5월...
날씨는 5월이라고 볼 수가 없다.
햇볕 쨍쨍....더운 날씨다...
마침 남편이 휴가중이라 둘이서 운현궁을 찾았다.
평일 운현궁은 조용하다.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의 자택이자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1863년 12월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부근의 고개이름 운현 또는 관현을 따 운현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864년 조대비의 명으로 그 영역이 대폭 확장되었고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노락당이 그 영역 안에 새로 세워졌으며
고종의 가래식 이후 이로당이 건립되었다. 당시 운현궁은 담장 둘레가 수리나 되고 4개의 대문이 웅장하여 마치 궁궐처럼 엄숙하였다고 한다.
<수직사>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궁에서 관리가 파견되는 등 거주 인원이 많았다.
<노안당>
운현궁의 사랑채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한식 기와집으로 처마끝에는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단 수법은 그 시대적 특징이다.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일상에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의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공자가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 라고 한 논어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대원군이 노년을
편안하게 살게 되어 흡족하다는 뜻과 노인들을 편안하게 모셔야 된다는 치국의 이념을 갖고 있다.
학창의를 입은 대원군
(흥선대원군은 노락당에 거할때 아청색 운문단 바탕에 깃, 고름, 거단, 수구에 흑색 선을 두른
학창의를 입었는데 이 학창의는 두리소매이며 목판깃으로 되어 있고 넓은 동정이 달린 포이다.)
<노락당>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정면 10칸측면 3칸 규모이다.
고종 3년(1866) 상간택이 끝난 후 명성왕후가 왕비 수업을 받던곳이자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래가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노락당은 초익공 양식의 사대부가 건축미를 느낄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문양(불발기창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붕의 용마루를 받치고 있는 종도리에는 용문양이 그려져 있어 건물의 권위와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로당>
노락당이 고종의 가례장소로 사용된 후 흥선대원군 일가에서 노락당을 안채로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지게 되자
안채 용도로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주로 여성들이 거주하며 살림하던 공간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정면 7칸, 측면 7칸규모이다. 현재는 예절학교로 사용중이다.
마침 운현궁 이로당 예절학교에 유치원생들이 들었다.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점심시간인지라 아마도 도시락을 싸오셔서 드시고 계신듯...아름다운 그림....^^*
운현궁을 나와 인사동을 들렸다.
인사동 골목안쪽의 대나무통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평일 운현궁은 조용하였지만 인사동은 정반대로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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