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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본문

바람길따라서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다보등 2009. 12. 8. 09:46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남한강변을 따라 폐사지를 찾던 날......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계산 자락에 간간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눈이 오락가락 변화무쌍한 12월초순의 겨울날......

고려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룡사지를 찾아 목계나루터를 지나 남한강변을 걸어 청룡사지에 이르렀다.

참나무숲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먼저 청룡사 위전비를 만난다.

 

충주 청룡사 위전비<충북 유형문화재 제242호>

숙종 18년에 세워진 2m가 넘는 크기의 4면비로 당시 청룡사의 창건 및 경영등과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이다. 청룡사는 고려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초기에는 보각국사가 머물면서 번성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사실은 이 비로서 짐작할 수 있다.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부도

충북 문화재자료 제54호

이 부도는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로서 정사각형의 지대석위에 2단의 하대석을 놓고 화강암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탑신 윗부분은 복발모양으로 조성하여 정상부에 3단의 돌기부분을 조각하였고 탑신의 전면부에 문자를 음각한 흔적이 보이는데

마멸이 심하여 눈으로는 쉽게 판독되지 않으나 '적운당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전사자석등

보물 제 656호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위해 만들어진 석등(일종의 장명등)으로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 정사각형이다.

아래부분에는 한 마리의 사자의 모습이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 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지붕돌은 마치 두툼한 방석처럼 만들어져 있어 고려시대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경기도 양주

희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

국보 제197호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이 부도는 고려말의 고승인 보각국사의 묘탑이다. 부도란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건조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부도의 전형적 형태인 8각원당형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이후로는 종모양이 많이 만들어졌다. 외형적 특징은 몸돌과 기단부

중간돌을 부풀려 놓은 모습이고 지붕돌의 합각마루에는 특이하게 용머리와 봉황이 수려하게 장식되어 있다.8각의 몸돌에는

사천왕을 새긴 것으로 보이며 각 모서리 기둥은 엔터시스로 이루어져 잇으며 표면에는 반룡이 기어 오르고 있어 아름다움과

조각의 정교함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지대석과 몸돌 위면에는 사리공이 있어 보각국사의 사리 및 옥촛대, 금 망아지,

금잔등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 강점기에 도난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석등은

조선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비

보물 제 658호

고려 공민왕과 공양왕 및 조선 태조의 국사로 있던 고명한 승려인 보각국사의 비이다.

문인이었던 선사 희달이 태조 3년(1394)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비문은 권근이 지었는데 그 내용은 고려 우왕 9년(1383)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추앙하고 기리기 위하여 왕명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개석은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부분의 모서리를 갂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문화재청-

 

 

 

 

 

 

...........청룡사가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이 고려시대 때 세워졌다는 설화만 남아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한 도승이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중에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갖고 올라가 땅에 떨어뜨렸다.

그 때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가 청계산 위로 올라갔고 여의주는 큰 빛을 내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면서 용도

사라지고 비도 멎었다. 스님이 산세를 자세히 살펴보니까 청계산이 비룡상천형의 길지임을 깨달았고 용의 힘이 꼬리에 있음을

깨달은 스님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절 이름을 청룡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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