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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탑평리칠층석탑 국보제6호 본문
중원 탑평리칠층석탑
국보 제 6호
소재지 :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높이 12.86m로 통일신라 석탑으로 규모는 가장 크며 높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로서 주변 경작지에는 가끔 기와가 출토되고 또한 석탑앞에는 석등하대석으로 보이는 8각연화대석이 남아 있다.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을 알 수 없다.
넓은 기단의 위아래 면석에는 우주(隅柱)와 4개의 탱주(撑柱)를 모각했고, 상층 갑석 밑에는 부연(附椽)을 마련했다.
탑의 규모가 커서 하층 탑신부는 여러 장의 석재로 구성했고, 상층부에 해당하는 6·7층은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하나의 돌로 건조했다.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를 정연하게 모각했으며, 옥개석의 층단받침은 모두 5단이고 그 윗면에는 옥신을 받치기 위한 2단 굄을 두어 신라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하고 추녀는 수평으로 만들어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다른 탑들과 달리
노반(露盤)이 2중으로 중첩되어 있어 특이하며, 그 위에는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얹혀 있다.
1917년 해체·복원 공사 때 탑신부에서는 2점의 동경·목제칠합(木製漆盒)·은제사리합(銀製舍利盒), 기단부에서는
청동제유리개합(靑銅製琉璃蓋盒)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탑 안 2곳에 사리를 장치한 예는 매우 드물며,
발견된 동경이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이 석탑은 창건 후 2차에 걸친 사리납치(舍利納置)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앞에 남아있는 석등의 8각연화대석(八角蓮花臺石)
*중원탑평리 칠층석탑에 얽힌 전설*
♣신라시대에 명필 김생이 절을 짓고 서적을 보관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금가면 반송에 김생사지가 있었음이 밝혀져
중앙탑과 김생건립설은 무관함을 알 수 있다.
♣나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하여 탑을 세웠다는 것으로 이곳에 먼저 임시로 탑을 세우고 건강한 사람을 영토의 남과
북의 끝에서 여러차례 동시에 출발시켜 보았는데 그때마다 이 곳 탑평리에서 만나게 되어 이곳이 중앙임을
확인하여 거대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명칭보다는 '중앙탑'으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충주지역에 왕기가 발흥하고 있어 이를 누르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사진:우리땅 공윤님>
국보 1호가 숭례문, 원각사지십층석탑 2호, 북한산진흥왕순수비 3호, 고달사지부도 4호, 법주사쌍사자석등 5호, 그리고 이곳 중원탑이 국보6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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