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황량한 비석에서 옛일을 찾다 -법천사지 본문

바람길따라서

황량한 비석에서 옛일을 찾다 -법천사지

다보등 2009. 12. 10. 14:03

법천사지(法泉寺址) 사적 제466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남한강에 인접한 부론면 법천리에 부처님의 진리(法)가 샘솟던 법천사지가 있다. 법천사(法泉寺)는 통일신라 원성왕 24년인 725년에 창건되어

한때 법고사라고도 불렀다 하나 창건연대는 모호하다. 이 절에서 당대의 제일가는 고승 지광국사 해린(海鱗, 984~1070)이 출가하고 열반에 들었다. 
지광국사는 고려 초기에 법상종(法相宗)을 널리 전파하였으며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사찰로 크게 번성 했다.

문종은 그를 어가로 모시며 유식학(唯識學)을 청해들었으며, 고려의 다섯 왕을 거치며 열 두 차례에 걸쳐 법호와 접계를 받아 부처님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았다.그가 입적한 후 고려 선종 2년에 법천사를 대표하는 유물인 부도와 부도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59호)가 세워졌다.

정유산이 찬하고 당대의 명필 안민후가 구양순체로 쓴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우리나라 부도비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반환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백미로 우리나라 부도를 통틀어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일반적인

부도탑 형태인 팔각원당형에서 벗어나 이 탑은 사리를 운반하는데 썼던 일종의 가마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기단의 맨 아래에는 용머리 모양의 장식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이것은 가마를 들쳐 메는 막대자루를 상징한다.

 

 

 

 

 

 

갑석문양(뒷면)

 

갑석문양(우) 

 

갑석문양(좌)

 

갑석문양 안상문양

(사진:문화재청)

 

페르시아 타입의 부도탑이 남한강가에 세워진 까닭 

지광국사현묘탑은 골곡진 아치형 창문을 비롯하여 페르시아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중 사리 장엄구를 운반하고 있는 장면은

지광국사 장례때 사리를 운반하던 화려한 가마를 본 뜬것으로 추정된다.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 인물의 인상착의 등이 서역지방 사람을

연상케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카프탄류 민족의상과 비슷하다.

이뿐만 아니라 문비(門扉)에서 문짝 윗부분에 해를 원형으로, 달을 초승달 모양으로 표현한 것은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해와 달을 다 같이 원형으로 표현하는 우리의 전통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렇듯

당시 수도인 개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첨단 양식의 승탑이 법천사에 세워진 것은 남한강의 수운이 이들 거점을 실시간으로

이어주는 문화적 소통로 구실을 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남한강의 물길은 실크로드까지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세종신문 여주포커스 -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용두화된 거북머리는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발굴중인 법천사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석물들이 안타깝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