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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길따라서

경주이야기

다보등 2009. 12. 25. 14:30

♠ 경주이야기 ♠

 

경주에 있는 불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불상을 소개한다.

경주 남산은 노천 박물관이라 할만큼 불상, 탑 등이 많다.

그 중에서 칠불암 뒤 가파른 절벽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은 우선 그 위치가 다른 불상을 압도한다

칠불암도 차를 버리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여기에서도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길을 다시 걸어올라가야

하는 곳에 이 불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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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드리는 신도가 보이지만 뒤는 바로 절벽이다. 예배공간이라고는 손바닥만 하다. 대신 이 곳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은 아주 그만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오줌이 찔끔찔끔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만큼 감명이 깊었다

 

 

마애불상은 바위에 돋을 새김으로 만든 불상을 말한다(불상 주변을 파서 불상이 도드라지게 한 것)

원래 이 곳에 신선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지 이름이 그리 붙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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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머리 장식으로 보아 부처가 아니고 보살님인데 한 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다리 하나는 바위 위에 걸치고 다른 다리는

땅에 내린 편안한 모습이다.     위치 탓인지 마치 구름 위에 계신 모습이라네

 

예전 남산에는 용장사라는 절도 있었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산의 다른 이름이 금오산이다(구미 금오산은 까마귀 烏인데 경주 금오산은 자라 鼇를 쓴다)

지금은 절은 없어지고 탑이 남아 있다. 절 터로 알려진 곳이 너무 좁아 아마 암자가 아니었나 싶다

이 탑은 기단부가 따로 없이 그 자리에 있는 바위 위에 바로 탑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전체를 기단부로 썼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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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괘릉.

통일 신라 시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구덩이를 파자 물이 나와 관을 허공에 걸고 매장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이라 한단다

물이 나오면 다른 곳에 묘를 쓰지 관을 걸고 묘를 썼다는 것이 이상하다

 

괘릉은 무인석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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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라 서역 사람(위구르인)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통일 신라 당시 위구르인들이 경주에 왔다갔다한 것으로 추정한다

처용도 위구르인이다

위 석상을 보면 눈을 부릅뜨고 입은 굳게 다물고 팔뚝을 걷어 부치고 있다

몸도 주몽에 나오는 금와(전광열)처럼 얼짱 각도로 비틀고 있다

생동감이 뚝뚝 돋는 조각이다

 

 

마지막으로 여근곡을 보자

여근곡은 산의 지형이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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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동그스럼한 부분이 여자 성기이고 그 뒤로 보이는 두 산봉우리가 유방을 연상케 한다

이 곳은 선덕여왕이 옥문지라는 연못에서 흰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군사들을 여근곡으로 보내 그 곳에 숨어

있던 백제군을  쳐부수었다는 고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신하들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았느냐고 묻자 흰색은 서쪽을 가리키고 옥문지라는 못은 그런 형상의 지형을 나타낸다며

설명을 한 후  <남근은 여근 속에 들어가면 죽게 된다>며 우리가 이길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하여 신하들을 실색케 했다는 말씀.

처녀왕의 배짱이 이 정도였단다. -펌 : 중년행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