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충북 보은군>선씨 종가의 보은 선병국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4호 본문

바람길따라서

<충북 보은군>선씨 종가의 보은 선병국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4호

다보등 2010. 9. 29. 15:05

<충북 보은군> 선병국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4호

 

 

 

 

선병국가옥을 가기전에 외속리면 서원리의 천연기념물 제352호인 서원리의 소나무를 먼저 만났다.

서낭나무로 살아남은 나무의 하나로 내속리면 상판리의 정이품송이 곧게 자란데 비하여 밑에서 두 개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고 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고 하며 '정부인송'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충북기념물 제43호인 상현서원(象賢書院)앞에서 신정일쌤의 설명에 귀 기울이기도 하며......

 

 

 

 

돌담길 따라 가을볕을 따라.......

 

 

 

깔끔한(?) 운치있는 건조장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흙으로 대충 빚은듯이 울퉁불퉁 흙담(?)이 너무나 재미난 골목길을 걸어 보기도 하고....

 

보은에서 동학의 흔적을 엿보기도 하며.....

보은 장내리 동학 취회지는 1893년 3월 동학교인들이 전국에서 모여 쌓은 돌성의 자취가 있다고....

지금은 남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지만 땅밑에 단단히 박힌 기초석은 19세기말 겨레를 위한 농민들의 불같은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사람이 하늘이다....서로 섬기세......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른 황금빛 들판에......

 

고개숙인 겸손한 마음으로.......

 

농민의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다.....

 

 

길을 걷다 문득 조그마한 공소를 만났다. 담쟁이로 멋진 인테리어를 한 공소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작아서 더 마음이 가는 장안마을 입구의 공소에서 평화를 느껴본다.

 

 

 

봄이면 초가지붕 살구꽃에 묻히고 여름엔 대추나무 푸른숲 우거진 보은은 대추의 명산지라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인 '선병국 가옥'에 이르렀다. 커다란 대문을 들어 서면 말로만 듣던 99칸 한옥이다.

1918년~1921년 사이에 지어진 이 집은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칸이나 높이등을 크게 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기의 대표적인 건물이다.건축 당시에 훌륭한 목수들을 가려 뽑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사랑채,안채, 사당채를 둘러싸고 있는 안담 바깥으로 널찍하게 외담을 둑담으로 두껍고 높게 둘러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다.

 

 

 

거대한 뒷간? 참 신기하고 재미나고 엄청나다....아래의 커다란 통이 정말 끔찍(?) 엄청나다.....ㅋ

 

선병국 가옥은 3만평의 부지에 99칸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세종 13년에 공포된 가사 규제에 따르면 신분에 따라 서민들은 10칸까지, 대군들은 60칸까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규제가 무너지고 각자의 재력과 신분에 따라 집을 짓게 되었다.임금보다 큰 집을 지을 수 없어

100이라는 꽉 찬 숫자보다 하나 적은 99칸을 짓기도 했다지만 사실 벼슬을 하는 이는 이런 집도 짓지 못하였다 한다.

나라의 녹을 먹는 이는 청빈한 생활을 해야 함이리라...

 

 

꽈리....요즘 아이들은 꽈리를 모를것이다. 꽈리라는 장남감조차 요즘은 없으니 설명을 해도 모르지 싶다.... 

 

집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꽈리의 아름다운 변신......

 

 

 

 

 

 

 

 

 

선씨 종가집에서는 간장이나 된장을 만들어 판매도 한다고 한다.

아당골 홈페이지(http://www.adanggol.com)에서 확인해 볼 일이다.....^^;;

 

 

재미난 것은 팔도의 항아리들이 다 모여 있다는 것이다.지방마다 항아리 모양이 다른데 아마도 기후탓 때문이지 않나 싶다....

이곳의 장이 맛있는 이유는 항아리에서 나오는 것일까?ㅎㅎ 

 

  

 

  

 

 

 1919~1921년 사이에 지은 이 집은 개화기의 물결을 타고 개량식 한옥구조를 시험하던 때에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한 것이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길게 늘어선 행랑채엔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고시공부하기엔 안성마춤인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