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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여행

호젓한 산사로 가는 여행지 울산 '문수사'

다보등 2011. 10. 25. 09:00

호젓한 산사로 가는 여행지 울산 '문수사'

 

 

 

 

 

 

망해사지에서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여고시절을 회상하다  인근의 문수사로 발길을 돌렸다.예전 소풍가던 시절엔 율리못에서 버스를 내려 마을길과 논길,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 문수사까지 오르는데 오전시간을 다 바쳐야 했었다. 그때는 웬만한 길은 걷는게 당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4)에 자장율사가 이 곳에 절을 세워 문수사라했다고 한다. 이 문수사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범어사의 말사가 되면서 사명을 문수암이라 고쳤다가 1989년에 중건하여 다시 문수사라 부른다.사실 문수사는 결혼후에도 남편이랑 두어번 올랐던 절집이라 망해사지와는 달리 눈에 익다. 지금은 절집 바로 아래까지 주차장이 있어 문수사까지는 20여분 걸어 오르는 수고만 하면된다. 절집을 오르는 20여분의 길이 약간은 가파른 길이긴 하지만 참으로 호젓하고 깊은 산속 은밀한 절집찾아 가는 기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길이다.

 

 

 

 

 

문수사는 울산을 대표하는 명산인 문수산(해발 600m) 8부능선쯤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작은 골짜기와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절벽위에 걸쳐있는 절집을 만나게 된다. 15여년만에 문수사를 오르다보니 문수사도 참 많이 변했다. 문수사는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말사이다. 전에 없던 이층누각의 범종루도 보이고 대웅전도 그렇고 주변의 전각들이 많은 불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산아래 왼편 철탑아래 숲속에 있는 작은 주차장이 보인다.엄마는 다리가 불편하여 주차장에서 제부랑 기다리기로 하고 나만 홀로 올랐다.

 

 

 

 

 

 

예전에 없었던 이층누각의 범종루가 일주문역할을 하고 있는듯 하다. 롯데 신격호회장이 불사를 하였다 한다.

 

 

 

 

문수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 342번지에 자리잡은 절로 문수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이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주로 영축산이라 불려오던 산이다. 천축국왕사성 부근에 있는 영축산의 이름이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온 것으로서 천축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이며 신선들이 살았고 독수리가 많이 있으므로 영축산 또는 축두, 축봉,축대라고도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조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렇게 나타난다. 또 이 산을 일명 청량산이라고 하였는데 산 아래에 있는 청량면은 청량산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이다.

 

 

 

 

 

 

 

사실 문수사에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갔으나 착각이었나보다. 아마도 망해사지에 있는 부도를 문수사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오래전일인지라....ㅋ하지만 망해사지에 있는 부도 말고 문수사에 분명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는 자료를 보았는데...실망감이 많았으나 어쩌랴 준비한 자료가 부족하였으니.....하지만 극적인 만남을 하였으니...하산길에서 보물 제382호로 지정된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을 만났으니말이다.....와우~^^*

 

 

<명부전 삼층석탑>

 

 

 

 

이 산을 문수산이라고 한 것은 화엄경 제 10법 운지로서 보살들이 살던 곳이어서 문수보살의 응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한다.삼국유사 권 5 연회도명 문수점에서 문수대성과 변재천녀가 응현하여 무거설화에서도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무거설화는 이렇게 전해진다."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장래를 영취산의 문수대성의 계시를 받아 결정키로 결심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의 영취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에 이르러 참배하고 또 길을 나섰는데 중도에서 길가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더니 대왕께서 오실 줄 알고 산으로 인도하여 모시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크게 만족하여 길을 따랐다. 그러나 삼호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 얼마가지 아니하여 동자승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은 직감에 이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이 이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여 크게 탄식하며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하고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왕은 발길을 돌려 월성(지금의 경주)에 환궁하여 사방의 땅이 다 타인의 소유로 돌아가고 나라의 힘은 쇠퇴하여 다시 일으키지못함을 통탄한 나머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꾀하였다. (자료 문화재청,울산광역시청 관광과, 문수사)

 

 

 

 

 

 

 

 

 

 

 

보현대 가는 길 스님들의 기도처에서 보이는 대웅전의 모습

 

 

 

 

 

 

 

 

 

 

 

 

 

 

 

 

주차장에 있는 건물로 이곳을 통해 절집가는 길로 이어진다.보물로 지정되어있는 석탑을 보기위해 문수사를 찾았는데 헛걸음을 했다. 하지만 문수사의 호젓한 산길을 걸어 십수년만에 오른 문수사나 주변의 절경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헛걸음은 아닌 것이다~~ㅎㅎ

하지만 산을 내려가다 그 탑을 기적처럼 만났으니 나무아미타불...부처님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