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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여고시절 소풍지였던 울산 '망해사지'를 찾아서 본문
단발머리 여고시절 소풍지였던 울산 '망해사지'를 찾아서~
'보물 제173호 망해사지석조부도'
아주 오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소풍을 가던 그 시절을 추억하자니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라 호랭이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된듯하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나와같은 세월을 보내며 초등,중등,고등,대학생이 되었고 졸업하여 사회인이 되었으니 나의 여고시절을 생각하자니 너무나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어릴적 아버지가 울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초등학교부터 여고까지 울산에서 자랐다. 그땐 고등학교가 남녀 통털어 5개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수도 없이 많아졌다. 그때는 주로 소풍지로 처용의 무대가 되는 '망해사지' 또는 '문수사' 좀 더 멀리 간다면 방어진울기등대...지금은 울산대왕암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울기등대로 소풍을 많이 갔다. 처음 고등학교엘 들어가서 봄소풍인가를 울산망해사지로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탑만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망해사'란 이름으로 절집이 새로이 생겼다. 지난달 울산에서 지인의 자녀 결혼식이 있던터라 친정이 있는 울산엘 갔었다. 하루밤 엄마랑 지내고 다음날 제부의 도움으로 주변의 망해사지와 문수사를 둘러 보았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오늘날 울산시 황성동 세죽 해변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갑작스런 구름과 안개를 만나 길을 잃게되자 그 연유를 일관에게 물은 즉 이것은 동해용이 일으킨 변괴로서 용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하여 가까운 곳에 절을 짓도록 하명하자 순식간에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다. 이 일로 인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고 이때 왕의 명으로 지어진 절이 영축산 망해사이다. 한편 헌강왕의 처사에 기뻐한 동해용은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춤과 주악으로 왕의 덕을 찬양하고 한 아들을 왕에게 보내어 나랏일을 돕도록 하니 그의 이름이 처용이다. 경주로 돌아 온 왕은 처용을 빼어난 미인과 결혼하게 하고 급간이란 벼슬을 주었다.-삼국유사-
부도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이다. 부도는 부처를 뜻하는 부다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 한다. 처음엔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승탑을 모두 의미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처럼 승탑으로 한정된 뜻을 지니게 되었다한다.
울산 망해사 쌍탑은 승탑이 아니라 불탑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공식명칭은 '보물 제173호 망해사지석조부도'이다
울산 울주군 문수산 중턱에 있는 망해사(望海寺)는 신라 헌강왕(875~885)때 창건되었다.망해사는 '삼국유사'에 나타난 처용설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의 망해사는 옛 절터 아래 새로 터를 닦은 작은 절집이다.
신용철 통도사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는 망해사터가 부도모양의 쌍탑이 동서로 세워지고 북쪽에 건물을 배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가람의 형식이라는데 주목했다. 9세기 승탑은 양양 진전사터의 도의선사 부도처럼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되다가 10세기에 접어 들면서 300보 안팎의 거리에 세워지는 사례가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 같은 형식의 부도를 같은 장소에 함께 세운 사례는 망해사지가 유일하다. 승탑에는 탑비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망해사 쌍탑에서는 이것도 찾을 수 없다. 지붕돌에 풍탁 같은 장식물을 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장엄공을 만들어 놓은 것도 불탑의 증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처용연구가인 김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는 망해사가 국방상의 이유로 창건된 경주 감은사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구조와 지형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감은사에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견대가 존재하듯 망해사에도 옛 절터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바다를 통한 외래인의 왕래를 관찰할 수 있는 망해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망해사 쌍탑이 불탑이 분명하다면 200년 남짓한 시차가 있지만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은 신문왕이 부처의 가피력으로 외적을 물리쳐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681년 창건한 감은사의 동서탑과 똑같은 기원이 담겨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망해사 쌍탑은 승탑일 수도, 불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탑이라면 부도 모양으로 조성한 그 배경이 궁금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질 것 같아 불탑설로 조금 더 마음이 기울게 된다.-서울신문 서동철기자 기사참고-
오랫동안 농지로 이용되던 망해사의 옛 터는 1957년 전 주지 영암스님이 발굴하여 당우를 건설하고 주변을 정비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의 대웅전은 1991년 건축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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