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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절집 서운면 "청룡사" 본문

사찰여행

휘어진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절집 서운면 "청룡사"

다보등 2011. 7. 6. 08:30

휘어진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절집 서운면 "청룡사"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28번지

 

 

 

 

 절집 주차장에 도착하니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장마로 인해 일요일 엄청나게 퍼붓었던 비는 언제냐는듯이 멀쩡한 하늘에 덥기까지하다~

청룡사 절집에 도착하며 제일 먼저 물소리로 시작을 한다. 한낮의 햇볕은 여과되지 않고 말간 하늘에서 그대로 내리꼿는다. 따갑기까지하다~ㅋ

산도 들도 나뭇잎들도 먼지 하나없이 말끔한 얼굴로 되바라져 보이는 한낮의 풍경은 그냥 덥다..뜨겁다...이다...

 

 

 

서운산 청룡사라고 적혀있는 천왕문을 들어서니 넓직한 마당에 한낮의 햇살에 눈이 부시다....그 절집 마당엔 고요한 적막함이 넘쳐나고 멀찌감치

대웅전이 "왔냐? "라고 묻는듯하다.

서둘러 대웅전을 향해 서서 "저 왔습니다......" 삼배부터 올린다. 어인일인지 불현듯 그런 기분이었다.^^;;

 

 

 

 

 

 

 

대웅전앞에 멀뚱이 서 있는 삼층석탑....

모양새가 영~~그렇다. 어쩌다 이리 울퉁불퉁 성한데라곤 하나없이 이 모양인지....

안내문을 보아하니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9호이며 부분적으로 파손된 지대석위에 3단의받침이 기단을 받치고 있으며, 기단은 4장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의 모서리 기둥과 버팀기둥이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은 어쩌다 이리 험한 꼴이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참 애처로운 모습이다.....;;

 

 

 

햇살이 뜨겁고 덥지만 이렇게 보니 뜨거운게 또 다행이긴 하다. 장마철 꿉꿉해진 자봉들이 모두들 밖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ㅎㅎ^^*

 

 

 

 

<<청룡사 대웅전>> 보물 제824호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대사가 건립하여 공민왕 13년(1364) 승려 나옹에 의해 새롭게 지어진 유서깊은 사찰로 조선초기까지도 왕실의

원찰이었던 곳이다. 대웅전이 다시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 34년(1601)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7세기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후 몇차례 고쳐지었다.

 

 

너무나 재미있는 모양의 기둥들....

생긴 그대로....지 잘난 모양 그대로...쓰임새 있는 기둥이 되어  잘난 나무만 나무노릇을 하는게 아닌 못난놈도 그 나름의 쓰임새가 있다는걸

보여준다. 세상엔 잘난 사람만 있는건 아니니까....두루두루 함께 사는 세상~~못난 기둥도 이렇듯 멋지게 쓰이지 않았는가~~^^*

구부러진 기둥들을 보며 어찌 이리 통쾌할 수가 있는가? 기분이 느무느무 좋다~~~ㅎㅎㅎ

 

 

구불구불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채 본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썼다. 사람이 만드는 건축물에 최대한 자연미를 살린 우리나라

건축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청룡사는 공양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다가 세종 19년(1437) 세종의 명에 의하여 고양으로 옮겼고 후에는 인평대군의 초상화를 모시고 왕실의

태평을 비는 원찰로 삼았었다. 후에 이곳은 조선후기에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근 불당골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

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기예를 뽐내며 안성장터를 비롯해 경기, 충청도 등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생활했다.

 

 

청룡사입구에서 10여분거리에 바우덕이의 사당이 있으며 바우덕이의 묘 또한 청룡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청룡사를 찾았다면 바우덕이의 사당을 잠시 들러봄도 좋을 듯 하다.

 

 

또한 청룡사엔 문화재들이 많다.

보물 제824호인 청룡사 대웅전, 보물 제 11-4호인 청룡사 동종, 보물 제 1302호인 청룡사 감로탱, 보물 제1257호인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등이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0호인 금동관음보살좌상,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청룡사 사적비 등이 있다.

 

 

<<안성 청룡사동종/보물 제 11-4호>>

조선시대 현종15년(1674)제작되었다.

 

 

 

 

 

 

 

 

 

 

 

 

 

 

 

 

 

청룡사 부도밭이 바우덕이 사당 가는 길목에 자리 하고 있다.

 

 

 

남사당은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부터 추수가 마무리되는 가을까지 마을을 떠나 천지사방을 떠돌며 살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둥지로 찾아 든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를 이끄는 여장부이다. 청룡사에서 내준 신표를 챙겨들고 봄부터 떠돌기 하였으되 겨우살이 걱정에 쓸쓸해지는게 이들의

살림살이다. 겨울이면 청룡사에 와 둥지를 틀고 일손을 거들며 식솔들을 거뒀다. 청룡사는 적당히 천대받으며 어렵사리 생존을 꾸려가는 남사

당에게 불목하니 등의 일거리를 제공하고 자연스레 한 식솔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 바우덕이가 살던 곳이 불당골로 알려져 있다.

사당이 있는 곳보다는 위쪽이라 하는데 펜션이니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 지금의 자리에다 사당을 지었다는걸 묵밥집 할머니가 일러 주셨다...^^*

 

 

 

역시 청룡사입구 길 한가운데 있는  <청룡사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청룡사의 건립연대, 변천과정 기타 사찰에 관한 사항 등을 알려주는 사적비이다. 비문은 승려 안정나준이 지었고 글씨는 직산현감을 지낸 황하민이

썼으며 사헌부 지평 김진상이 전액을 썼다.

..비문에 의하면...

 고려 말 승려 나옹이 이 절을 중창할 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아서 서운산 청룡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세조가 수원지역의

논을 하사하고 서울 신흥사와 진관사의 기물을 보냈으며 인평대군이 이곳을 왕실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아 새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승려 사간이 영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의 전각을 다시 지었다.  뒷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절집입구에서 먹은 투박한 솜씨로 내어 놓은 묵밥....^^*

 

 

청룡사 들어 가는 길목에 청룡호수가 있었다. 들어 갈때는 그냥 지나쳤다가 나오면서 잠시 차를 세우고 호수를 바라봤다.

얼마전 단숨에 읽은 정유정의  "7년의 밤"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된 세령댐이 생각이 났다. 소설을 읽은지 얼마되지 않은 탓인지 호수를 보니

얼핏 세령마을과 세령댐....손에 땀을 쥐게 하던 극박하고 숨막히던 치밀한 거친 호흡들이 호수위를 둥둥 떠다니는듯 하다.